지난해 7월 파업에 돌입했다 직권중재에 회부돼 불법파업으로 규정되었던 엘지정유(현 GS칼텍스)노조가 '불법'의 멍에를 벗게 됐다.
12일 대법원 1부(주심 윤재식 대법관)는 "노동조합과 회사가 순차적으로 배제하는 공익위원의 명단을 제출하였음에도,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 사건 노동조합이 배제한 공익위원을 포함하여 특별조정위원을 임명하였"다며 "(이에 따른) 중재회부권고결정은 관련 법령의 규정을 위반한 위법한 것이며, 이와 같은 하자 있는 절차에 기초한 이 사건 중재회부결정 역시 위법하다고 볼 여지가 있는 것"이라며 엘지정유노조 김정곤 위원장의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아래 노동조합법) 위반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광주지법 본원 합의부로 환송했다.
현행 노동조합법은 수도·전기·가스·석유정제 및 석유공급사업, 병원사업 등을 '필수공익사업'으로 규정하고 쟁의시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가운데 노동조합과 사용자가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은 3인 내지 5인 중에서 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지명해 특별조정위원회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제72조3항). 하지만 당시 중앙노동위원회(아래 중노위) 위원장은 노조가 배제 대상 공익위원 명단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위원을 특별조정위원으로 임명했던 것.
이번 판결은 이런 절차상의 문제를 이유로 특별조정위원회의 중재회부권고와 이에 따른 중노위원장의 중재회부 결정을 위법하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15일간의 쟁위행의 금지기간 동안에 이루어진 노조의 파업 또한 '불법'이라는 멍에를 벗게 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파업 과정 중에 구사대와의 충돌로 인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업무방해 △명예훼손 등 나머지 공소사실은 그대로 인정했다. 또 직권중재가 헌법에 위반된다는 변호인 측의 상고에 대해서도 "필수공익사업에 있어서 노사 양측의 극단적인 이해 대립과 갈등으로 파업이 빈발하면 공중의 일상생활을 마비시키고 국민경제가 붕괴의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직권중재 제도는) 입법목적이 정당하고…기본권 제한의 정도도 최소화하고 있"어 "헌법상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지 아니한다"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상범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는 "노동조합이 배제하는 공익위원을 특별조정위원으로 임명한 중노위의 관행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로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며 환영했다. 그는 "불법파업 참가자라는 이유로 해고 등 징계를 받은 노동자들이 부당노동행위 판정 등의 구제 가능성을 얻게 됐다"고 분석했다. 또 "파기 환송의 경우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가 흔하므로 구속자들은 곧 풀려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엘지정유노조 해고자인 김흥주 씨는 "보수언론이 귀족노동자들의 불법파업으로 매도해 복귀 이후 무더기 징계를 받은 것은 물론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반성한다는 서약서를 강요당하는 등 극심한 인권탄압에 시달렸다"며 "불법이라는 딱지를 이제라도 떼게되니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난해 엘지정유노조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주40시간 노동제 실시를 통한 신규인력 창출 △지역사회발전기금 출연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으나 직권중재에 회부되면서 파업이 '불법'으로 규정됐고 파업 돌입 다음 날 즉각 공권력이 투입됐다. 결국 김 위원장 등 7명이 구속됐고 9명이 해고됐으며 12명이 강제사직 당하는 등 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전원이 징계를 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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