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한데 갇혀 있는 큰방은 안에서는 문을 열 수 없도록 되어 있었고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유일한 창문은 철사로 고정돼 있어 환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벽에는 신문지가 붙어 있고 손으로 뜯어낸 자국이 선명했다. 주택가 3층 건물 옥상에 있는 시설의 외부 창문도 이중 쇠창살로 둘러쳐져 있어 외부인은 전혀 접근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뒤늦게 도착한 최 원장은 "애들이 멋대로 돌아다닐까 봐 (문을) 잠궜다"며 "이중 쇠창살은 애들이 자꾸 창문을 깨니까 만들어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원장은 조사팀의 거센 항의에 대해 "벽지로 붙인 신문지를 뜯는 것도 작업치료가 된다", "쇠창살을 손으로 긁으면 나는 소리로 음악치료가 된다"고 우겨 실소를 자아냈다.
"신문지 뜯는 것도 작업치료"
이번 조사는 조건부신고복지시설 생활자 인권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준, 아래 시설공대위)가 지난 4월 받은 제보를 토대로 예방센터에 신고해 실시됐다. 당시 제보자에 따르면 원장은 △외출시 바깥에서 열쇠를 잠가놓고 △악취가 심한데도 옷을 자주 갈아 입히지 않으며 △학령기 아동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고 감금했으며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은 빨래 방망이로 구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진관 예방센터 상담팀장은 "보호자 없이 방치한 것은 방임과 학대로 볼 수 있다"며 "아동의 양육과 보호에 적절치 못한 상황이므로 일단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부모들에게 연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아동복지법 제29조 4호는 "자신의 보호·감독을 받는 아동을 유기하거나 의식주를 포함한 기본적 보호·양육 및 치료를 소홀히 하는 방임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어길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장애인교육권연대 김기룡 사무국장은 "학교에 가야할 나이의 장애아동들이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감금·방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 시설이 명백하게 영리행위를 하고 있는데도 행정기관에서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고 지적했다. 그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대학 등에 개설되어 있는 언어교육 평생과정을 듣고 받은 수료증을 자격증으로 위장해 장애아동들을 모아 돈을 벌 수 있는 게 현실"이라며 "장애인 조기교육의 법제화를 통해 관리감독과 교육의 질을 높이는 방안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시청 공무원이 시설 방문하고도 묵인" 의혹 제기돼
복지부는 지난 2002년부터 시행한 '미신고복지시설 종합관리대책'을 통해 신고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미신고시설에 대해 올해 7월까지 신고시설로 전환하는 것을 조건으로 '조건부 신고'를 받아 왔다. 하지만 지난 2003년 만들어진 이 시설은 '조건부 신고'는커녕 올해초 동사무소 직원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행정기관에서 존재조차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올해 초 시청 관리감독 담당자가 시설을 방문해 아동들의 상황을 확인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지난 1월 단대동 옥탑방을 방문했던 성남시청 사회복지과 최미숙 씨는 "미신고시설이야 정부지원이 없어 열악할 수밖에 없으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시설이 너무 열악해 원장에게 폐쇄하라고 충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과정에서 최 씨가 지난 4월 케이티앤지(KT&G)가 시행한 '미신고복지시설 건축물 설비 개보수 지원사업'에 이 시설을 추천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이에 대해 최 씨는 "정부 방침도 되도록 지원을 통해서 (미신고시설을) 양성화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변명했으나 성남시장, 인근학교장 등이 시설장에게 표창한 사실도 확인돼 의혹만 더했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센터 김정하 간사는 "담당 공무원이 1월에 이미 시설의 존재를 알고서도 그동안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며 "미신고시설을 적발하고 피해자를 구제해야 할 일선 공무원들의 자세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어이없어 했다.
시설 이중 운영, 부모들 속여
한편 최 원장은 수용시설인 지인교육원과 함께 인근 야탑동 소재 한 아파트에 '솔잎원'이라는 시설을 두고 입소 상담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원장의 안내에 따라 방문한 솔잎원은 깔끔하게 청소된 방에 교육용 책자가 비치되어 있는 등 단대동 옥탑방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예방센터의 연락을 받고 도착한 한 아이의 어머니는 "원장이 보여준 야탑동 아파트 시설이 잘되어 있어 깜빡 속았다"며 "옥탑방은 한번도 가본 적 없고 원장이 얘기하지도 않아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는 "원장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해도 인근 식당에서 미리 약속을 잡아야만 만나게 했는데 (이중 운영 사실을) 미리 눈치채지 못했다"고 가슴을 쳤다.
최 원장은 "중증인 애들은 서로 물어뜯고 싸우니까 관리할 수 없어 단대동 옥탑으로 보낸 것"이라며 "하루만 살아보면 내 고충을 알 것"이라고 변명했다. 이에 대해 김 간사는 "원장은 정신지체 아동들이 자기가 당한 상황을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해 부모들에게 들키지 않았다"며 "이렇게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미신고시설이 전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르는 일"이라며 "전국적인 규모의 민관합동조사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갇혀 있을 수용자들을 하루빨리 구해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모들, "이런 줄은 몰랐다"…뒤늦은 후회
아이들은 조사 당일 예방센터에 의해 성남시 중원구 소재 소망재활원에 일시 보호됐다 부모들에게 인계되었다. 17일 아이들을 찾아온 ㄴ 아무개 씨는 "새끼는 이렇게 사는 줄도 모르고 두발 뻗고 산 내가 죄인"이라고 후회했다. 또 다른 부모인 ㄷ 아무개 씨는 "원장이 (내가 가지고 있는) 땅문서를 넘겨주면 추가 비용 없이 평생 데리고 지내겠다고 제안해 마음이 흔들렸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날 뻔했다"고 말했다.
부모들에 따르면 최 원장은 학원비 명목으로 1인당 매달 40∼100만원씩을 받았고 지난해 여름에는 일부 부유한 부모들에게 시설 이전 명목으로 1억원의 후원금을 요구하기도 해 부모들이 회의를 열기도 했다. 또 최 원장은 부모들이 간식비나 옷값 명목으로 20∼30만원씩 쥐어준 돈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예방센터로부터 수사를 의뢰 받은 성남중부경찰서는 17일 최 원장을 수사한데 이어 18일 아동들과 부모들을 잇달아 수사하고 있어 최 원장의 처별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