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당신이 기억하고 있는 생애 최고의 순간은?
밤늦은 시간 모닥불 피워놓고 둘러앉아 두런두런 나누었음직한 이야기, 혹은 모꼬지 가서 얼큰히 술에 취해 한번쯤 털어놓았음직한 우리들의 이야기. 그 낭만의 기억들을 굳이 깨고 싶진 않지만,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은 어쩌면 '현재 나에게 있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언젠가 한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진행자가 청취자들이 보내온 '내 생애 최고의 순간'을 조금은 건조한 목소리로 소개하고 있었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을 때 최고의 순간이었죠", "교내 체육대회 후 난생 처음으로 전교생 앞에 나가 상을 받았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복권이 당첨되었을 때, 하지만 잠시 후에 기간이 지난 복권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등과 같이 다양한 삶의 방식만큼이나 다양한 사연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사연이 있었다. "군 복무 시절, 말년 병장이었을 때가 정말 최고였습니다" 사연 끝에는 마치 "충!성!"이라는 경례가 뒤따라올 것만 같았다. 덩달아 내 손도 쭈뼛거렸다. 그 다양한 사연들 중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말년 병장' 시기를 '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불행히도', 난 그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만만치 않은 사회생활, 게다가 높은 명성을 얻는다거나 큰돈을 벌어 '떵떵거리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박탈된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사회생활'이란 곧 '참고 견디는 생활'을 의미한다. 더럽고 억울해도 참아야 하고 죽을 것같이 힘들어도 견뎌야 하는 게 바로 우리 민중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사회는, 우리에게 그런 거다. 그런 '지금 나의 삶'이 만족스러울 리 없다. 그러나 '대한민국 예비역'들에겐 '말년 병장'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말년 병장' 시기는 무소불위의 권력의 시기를 의미한다. '졸병'들에게 '죽으라'고 하면 죽는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여전한 우리 군의 모습이다. 명령 한 마디에 '찍 소리'도 못하고 복종해야 하는 사람들을 수십 명 거느리고, 게다가 몇십 명의 '동료'들과 함께 한 방에서 동고동락을 해야 하니 심심할 틈도 없다. 일반적으로, 군대에서 말년 병장이 되면 '군 생활 완전 피는' 거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이 언제 한 번 그런 '명령자'의 위치에 서 보겠는가. 게다가 우리 사회처럼 여전히 '덜떨어진'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지만 동시에 '말년 병장' 시기를 '내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꼽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말년 병장' 시기를 회상하고 그리워하는 만큼 군사주의 문화에 대한 애착 역시 강해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군대 가기 전에는 그렇게 얌전했던 친구 녀석들이 군대만 갔다오면, 친구들에게든 후배들에게든 자신이 마치 '상관 마냥 구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다.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내재된 '말년 병장'의 욕망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오는 것을 눈치채는 것은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군사주의 문화는 군복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기억' 속에도 군사주의 문화는 깊이 뿌리 박혀 있고 '지금' 내가 어려울수록 그 기억은 더욱더 강렬하게 불러내어진다. 나 자신을 포함해, '기억'과 '향수'의 주체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내재해있는 군사주의 문화의 실체에 가끔 숨이 '턱'하니 막혀오는 걸 어찌할 수 없을 뿐이다.
- 2908호
- 평화,물구나무
- 박석진
- 2005-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