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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여성 평등권, 병역의무로 완성된다?

여성 시민권의 군사주의 편입을 넘어

여성 집징대상 제외는 평등권 침해?

얼마 전 한 여자고등학생이 여성이 징집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평등권에 위배된다는 주장을 하며 헌법소원을 내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즈음 각종 매체에서도 '여자도 군대 가야하는가'라는 문제를 이슈로 내세웠다. 찬반 토론회를 열기도 했고, 한쪽에서는 찬반의 대립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넘어서서 생산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양상은 5~6년 전의 군가산점제 폐지를 둘러싼 논쟁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 당시 군가산점제 폐지 운동을 하던 여성주의자들은 많은 남성들로부터 "억울하면 너네도 군대 가라"는 식의 공격을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여자는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지지 않느냐"며 반격했다. 남성의 군복무와 여성의 출산·양육은 예전부터 대립되는 등가의 의무로 치부되곤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참 억지스러운 비교인데 말이다.

1999년 군가산점제가 폐지되면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던 이러한 논쟁들이 근래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이는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하는지, 의무를 진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사실상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순히 봉합되어 있었던 것이었음을 드러낸다.


밀려드는 '여성 병역의무' 논리들

지난 7월 국회 안보포럼에서는 '안보! 남성만의 영역인가?'라는 다소 선정적인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이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면 여성의 안보 참여 확대 움직임에 흐르고 있는 몇 가지 논리들을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출산율 저하로 인해 군인력이 감소하는 것에 대비하여 여성 군인력을 확충시키자는 생각이다.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니 국방의 의무라도 다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라 할 수 있는데, 물론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둘째, 여성들의 참여 확대가 폭력적이고 위계적인 군대 문화를 변화시켜줄 것이라는 믿음이다. 특히 6월에 있었던 '총기 난사 사건' 이후 군문화 개혁에 대한 안팎의 요구가 거센 시점이라 이러한 주장은 더욱 호응을 얻는 것 같다. '비리와 거리가 멀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닌' 여성들이 군대에 더 많이 들어가서 현재의 문제들을 상쇄시켜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주의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발상 자체가 편견에 근거한 성역할을 고정시킨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군 내부에서 변화를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겠다는 안이한 태도로 해석된다.

세 번째 논리는 국방/안보 영역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를 평등권 획득과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이다. 사실 군복무와 시민권의 관련성에 대한 논의들은 이전부터 있어왔다. 군복무를 다함으로써 시민권을 보증 받아온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군가산점 제도만 해도 군대에 다녀오지 않은 사람들을 '이등 시민'으로 여기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좀 더 확실한 시민권을 획득하는 길이라는, 이런 생각은 군인이 여성에게 '매력적인 직업'으로 여겨지는 요즘의 사회적 인식과 맞물려 '그럴 듯한' 논리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머니, 애인의 역할에다 군인의 의무까지

이 가운데 평등권과 병역 의무를 연결시키는 주장이 사실은 얼마나 허구적인지에 대해서는 언니네트워크 운영위원인 권김현영 씨가 2003년 페미니스트 저널 <IF> 봄호에 <강제징집제도는 성차별주의를 정당화시킨다>는 글을 통해 이미 밝힌 바 있다.

이 글에 따르면, 남녀공동징병제를 실시하는 이스라엘에서는 여성이 결혼을 하거나 아버지의 요청이 있을 경우 징병을 피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여성에게 국가에 충성하든지 아니면 '가부장'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여성군인들은 군인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어머니, 애인으로서의 역할까지 수행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는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권김 씨는 이스라엘의 사례를 "군대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여성징병을 성평등으로 가는 길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8일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WAW) 주최로 열렸던 '여성/병역/의무-대안적인 논의를 위해서'라는 제목의 집담회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집담회는 최근 여성병역의무 논쟁에 대한 대안적 논의 흐름을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최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최정민 씨는 "군대에서는 전투병이 꽃인데 이스라엘 여군들은 비서나 교사의 역할로 한정된다. 여성들은 병역거부를 해도 가시화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이 징집 대상이 된다고 해서 곧 평등권 획득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평화바닥 수하 씨 역시 이에 동의하며 "군대를 통해서만 온전한 국민으로 대우받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다시금 국방의 의무와 군사영역의 신성성을 공고히 한다"고 비판했다.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을 잇는 담론 짜기

이날 집담회에서 권김현영(언니네트워크) 씨는 군가산점제 폐지 운동 때부터 지금까지 운동이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담론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했다. 그렇다면 여성운동과 평화운동은 어떤 지점에서 만나며 '다시' 담론을 만들어낼 것인가. 사실 그간 안보 개념을 재정의 하고 사회적 의무를 다양화하기 위한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다.

집담회에서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보라 씨가 지적했듯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수행해야 할 의무에는 국방의 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무 등 사회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여러 의무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각각의 의무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절대적으로 부과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시 차별하는 것은 경계해야 하지만 말이다.

안보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평화운동가들은 국가안보만이 안보의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변화시키는 차원에서 '인간안보'개념을 내세우며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안보 담론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인간안보 개념에 있어서도 젠더화된 관점에 입각해 '여성에게 안전이란 무엇인가, 여성이 폭력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새로운 물음이 제기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것이 아직도 대중들에게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안보'하면 국가안보와 관련된 이야기만 쉽게 떠올리고, 의무를 얘기할 때도 헌법에 명시된 네 가지 의무만을 '외우듯' 말한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담론들이 힘을 갖지 못한 데에는 소위 말하는 군사 전문가들이 스스로의 엘리트 벽을 놓게 쌓으며 평화운동가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인 탓도 크다.

이러한 와중에 국방개혁을 둘러싼 제안들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지난 달 말 열린우리당과 국방부는 장병 복무여건 개선사업에 대해 논의하며 군가산점제 폐지 부활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완전 부활은 못해도 유사한 제도를 통해 군복무 경력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당정의 주장을 보며 문제가 정말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성운동,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무력감을 이기고 일어나, 엘리트 벽을 뚫고서 좀 더 강한 파급력을 만들어내야 할 상황에 놓인 듯 하다. 정부나 안보 정책 전문가들의 주장에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라 새로운 논의의 장을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이 군대가 없는 사회에 대해 상상해보도록 자극하고, 개개인의 상황에 따라 어떠한 안보가 필요한지 고민해보도록 유도하는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직은 막막하지만 선정적인 찬반 논쟁을 넘어서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고민들을 털어놓고 '다시금' 돌파구를 찾기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가 마련한 집담회는 새로운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작은 시작이었다.
덧붙임

진영 님은 전쟁을반대하는여성연대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