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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움틈] 사법개혁의 엔진과 방향타를 바꿔라

시동 걸린 아래로부터의 민주적 사법개혁운동

위로부터의 ‘사법개혁’ 움직임이 잰걸음을 달리고 있다. 올초 대통령자문기구로 출발한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한승헌, 아래 사개추위)가 합의된 개혁안들을 지속적으로 쏟아내고 있고, 오는 26일 공식 출범하는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에 개혁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드높다. 올 정기국회에서 법률안이 본격 심의되고 신임 대법원장 임명에 뒤이은 대법관 교체 시기가 찾아오면 ‘사법개혁’ 논의는 또 다른 전기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금까지 법조권력이 주도해 온 미온적 ‘사법개혁’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국민 주도로 진정한 사법개혁을 일구어내고자 하는 작은 물결이 일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지난 15일 ‘민주적 사법개혁 실현을 위한 국민연대’(아래 민주사법국민연대)는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이라는 이름으로 사법개혁의 굵직한 원칙과 과제를 발표했다. 민주사법국민연대는 지난 5월 민주주의법학연구회가 중심이 되어 출범시킨 ‘국민을 위한 사법개혁과 변호사 연간 3000명 배출을 위한 국민연대’를 확대 개편한 조직이다.


독점된 사법권력, 독점된 ‘사법개혁 엔진’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문민정부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사법개혁’ 추진기구의 출범은 새 정권이 자신의 개혁성을 드러내기 위한 단골메뉴였다. 이들 기구에서 제시한 무수한 개혁과제들은 곧 자취를 감춰버렸지만, 그만큼 사법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크다는 점을 방증하기도 한다.

사법권력은 법을 단지 해석․집행할 뿐 아니라 적극적 법해석을 통해 새롭게 ‘현실의 법’을 ‘창설’하기까지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권력과 유착해온 음습한 과거,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로 똘똘 뭉친 사법구조, ‘유전무죄 무전유죄’, 판사․검사의 오만한 권력 앞에서 능욕당해야 했던 힘없는 이들의 인권, 높디높은 변호사 문턱 등 사법이라는 성역 앞에서 법 앞의 평등,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 적법절차에 대한 권리는 시궁창에 버려지기 일쑤였다. 사법권력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사법권력만큼 오랜 세월 개혁의 무풍지대로 안주해온 곳도 드물다.

또 다른 문제는 사법권력에 균열을 내기 위한 시도들마저도 국가기관과 소수 법률가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현 사개추위가 민관합동기구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래로부터 분출하는 사법개혁 논의를 수렴하면서 가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사개추위의 논의 반경은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가 지난해 말까지 활동하면서 이미 마련해 놓은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 결과, 현 사개추위에서는 사법개혁을 실질적으로 담보해낼 만한 법원 내부의 개혁 장치가 다루어지지 않게 됐고, 검찰의 저항에 부딪혀 오히려 개혁안을 후퇴시키는 과정을 밟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사법국민연대 이상수 공동집행위원장은 “오히려 사법개혁의 대상이 개혁의 의제를 장악함으로써 사법개혁을 가로막고 있는 형국”이라고 평가한다. 개혁되어야 할 이들이 사법개혁의 나팔을 독점하여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면서 다만 언저리에서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사법개혁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법개혁의 흐름을 돌려 국민에 의한 사법개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민주사법국민연대의 활동 목표이다.


사법개혁의 새로운 방향타

개혁의 핵심 동력을 바꾸어내는 일은 개혁의 방향타를 돌리는 일과 맞닿아 있다. 민주사법국민연대가 발표한 ‘민주적 사법개혁 국민안’(아래 국민안)은 총 15개의 강령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핵심 방향은 독점적 사법권력의 민주적 재편, 인권 중심의 사법서비스 강화, 그리고 사법부 자신의 과거청산으로 요약된다. 국민에 ‘의한’ 사법, 국민을 ‘위한’ 사법구조를 만듦으로써 공정한 수사․재판, 빠르고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재판을 가능케 하는 것이 주요 방향인 셈이다.

물론 사개추위도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 확보, 신속하고 공정한 사법제도, 인권보장 강화, 우수 법조인력 양성 등을 기본 이념으로 내걸고 있어, 언뜻 보면 국민안은 사개추위 안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부 강령을 뜯어보면 많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국민안이 가진 가장 중요한 차이는 ‘사법권력의 민주적 재편’을 목표로 법원과 검찰이 누려온 특권과 반민주적 구조를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선 법원구조의 재편 과제로는 ‘독립적 법관’의 존재를 가로막아 온 등급화된 서열구조 폐지와 법원행정처 기능 축소, 대법원장의 인사특권을 축소하기 위한 법관인사위원회 구성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 검찰권력을 향해서는 독립 수사를 보장하기 위한 검사동일체원칙 폐지, 검찰의 기소독점을 제어하기 위한 기소법정주의(중대 인권침해범죄와 권력형범죄의 경우)와 시민기소제 도입, 검찰의 불기소처분 불복장치 강화(모든 사건에 대한 재정신청제도 확대 등) 등의 개혁과제를 제시했다. ‘권력 분산, 국민 참여, 특권 해체’를 바퀴로 하는 개혁의 수레를 돌리고 있는 셈이다.

수사․재판 절차 전반에서 장애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 시정되어야 함을 분명히 하고 있는 점도 향후 위로부터의 사법개혁 흐름과 변별점을 형성하는 주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법개혁 흐름의 ‘문턱’을 넘어서

국민안은 아직까지 포괄적인 강령 수준으로만 제시되어 있어, 향후 사회적 논의를 촉발․심화시켜 내면서 구체화․보완되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법관을 국민이 직접 선출할 수는 없는가, 반차별의 시선으로 사법절차를 재구성하려면 형사소송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져야 하나, 배심제는 한국 현실에서 꼭 필요한 제도인가 등의 물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법원, 검찰, 변호사업계를 주축으로 진행돼온 사법개혁의 문턱을 낮추어 아래로부터의 사법개혁 운동을 본격화시켜야 할 만만치 않은 과제도 남아있다. 그래야만 국회 심의 과정에서 더욱 뒷걸음질을 치게 될 ‘위로부터의 사법개혁’ 흐름에 제동을 걸 수 있다. 지금껏 사법개혁은 ‘필요하기는 한데 쉽게 접근하기는 힘든’ 운동과제로 머물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만들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다. 민주사법국민연대가 진정한 운동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