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심판이 100일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저 길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지난 3월 8일 윤석열 구속 취소부터 김성훈 경호차장 구속영장 기각,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 기각까지 내란을 주도하고 동조한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이 잇달았다. 계엄령이 포고되고 헌정질서가 파괴되는 광경을 모든 시민이 목격했음에도 이 내란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처벌되기는커녕,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며 직무를 이어가는 상황에 시민들은 분노와 동시에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제는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심판마저 제대로 판결하지 않고 민주주의의 원칙마저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도대체 왜 이렇게 윤석열 파면이 어려운 일이 된 것일까.
국민의힘의 지연전략
시민을 향해 총구를 겨눈 윤석열에 대한 탄핵심판이었기에 첨예한 법리적 쟁점은 없었으며, 인용을 예상하지 않는 사람도 없었다. 이를 국민의힘도 알고 있었지만 이들은 애초부터 시간을 끌면서 탄핵소추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12.3 계엄 이후 열흘을 넘는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었다. 탄핵소추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탄핵 사유 중 내란에 대해서는 형법적 판단보다 헌법적 평가를 토대로 심판해달라는 국회 탄핵소추단의 요청에 따라 법리를 정리하는 과정을 꼬투리 잡기 시작했다. 탄핵 사유 중 핵심인 내란죄가 철회됐으니 탄핵소추도 무효라는 아전인수격의 해석을 하며 국회의 재표결을 주장했다. 탄핵소추의 이유와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후에도 국민의힘의 작전은 일관되게 지연이었다. 탄핵심판에서는 검찰의 증거를 쓸 수 없다는 법리적 꼬투리부터, 헌법재판관에 대한 유언비어, 윤석열 탄핵심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재명의 재판 일정과 맞추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지난 넉 달 내내 국민의힘은 계엄령 포고와 내란을 일으킨 행위 자체가 아니라 탄핵의 절차를 중심으로 탄핵심판의 쟁점을 흐리고 논란을 키우며 지연전략을 펴온 것이다.
국민의힘이 꼬투리 잡기식 억지 주장으로 탄핵심판을 지연시킬수록 상황은 악화되어왔다. 계엄을 옹호하는 극우 세력이 결집했고, 이 대중적 기반을 바탕으로 국민의힘은 내란수괴와 함께 자신들의 정치를 이어갈 토대를 마련했다. 탄핵을 반대하는 약 30%의 여론을 모아낸 국민의힘은 이제 계엄령을 기억에서 지운 것마냥 윤석열 탄핵은 각하되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치고 있다. 헌정질서 파괴에 관한 재판이 어느새 정치 재판처럼 여겨지도록 만들어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부담을 쌓는 것이다. 이 부담이 쌓일수록 이론의 여지가 없던 탄핵심판도 점점 결론 내기가 어려워진다. 민주주의 자체를 파괴한 윤석열의 행위에 대한 탄핵심판을 마치 민주당의 기존 행정 관료들에 대한 탄핵과 다르지 않은 정쟁의 사안 중 하나로 치부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런 국민의힘의 주장이 탄핵심판의 본질적인 사안이 아님에도 정쟁화에 성공한 것은 결국 극우 대중이 반응하며 정치적 지지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서로를 반대하면서 입지를 키운 양당정치가 부메랑처럼 돌아와 민주주의 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주의 파괴가 정쟁이 되어가는 과정
계엄 이전부터 한국 사회의 정치는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양극화의 경로를 밟아왔다. 지금의 거대 양당구도가 자리 잡은 것은 2017년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촛불 광장 이후다. 촛불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최저임금 1만원, 노조할 권리, 생명·안전에 관한 권리, 차별금지법 등 내 삶을 바꾸는 사회에 대한 바람을 함께 외쳤고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제가 쏟아져나왔다. 권력을 휘두르는 일에만 관심 있던 기존의 정치와는 결별하고 광장에서 제기된 민주주의의 요구들을 누가,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는 새로운 정치의 과제가 대두된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들어선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개혁과제는 ‘적폐청산’이라는 이름 아래 권력 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치면은 언제나 국민의힘과 민주당 사이에서 검찰개혁, 공수처 신설논의로 끊임없이 대치하는 장면으로 채워졌다. 이에 반해 광장에 나온 민주주의의 과제들은 어설프게 시도하다 포기되거나 나중으로 밀려났다. 다양한 시민의 바람이 정치의 장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같은 선거제도를 어렵사리 도입해도 거대 양당이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여 오히려 소수의 목소리를 배제하고 양당 구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시켰다.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해 광장을 열었던 시민들은 양당의 대립 속에서 정치를 통한 효능감을 느낄 수 없는 상황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촛불 광장을 거친 이후에도 정치의 장에는 양극단의 지지세력만 남았다. 박근혜 탄핵으로 기반을 잃었던 현재 국민의힘 계열의 수구 보수 정당이 다시 정치적 힘을 회복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압도적 지지 속에서 출발했던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양당구도를 강화하는 흐름만 이어가다 결국 정권마저 빼앗겼다. 하지만 정권 교체 이후에도 양당은 시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과제에는 무관심했고 양당 간의 강 대 강의 대치만 더욱 강화되었다. 민주당은 윤석열이란 거대 보수 정치세력과 맞서 싸우는 것처럼 말해왔지만,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 소수정당의 자리까지 빼앗으며 200석에 가까운 야권 의석을 만들어낸 민주당의 권력 또한 충분히 비대했다. 윤석열 정권 내내 극단의 줄다리기만 이어간 여야 누구도 정국을 주도할 수 없는 구도가 이어졌다. 양당은 각각 거부권과 탄핵을 자신들에게 더 유리한 정치적 선택이라 여기며 남발했다. 민주주의의 절차로서 그 취지와 의미는 무시한 채 말이다. 그리고 결국 그 강 대 강 대립의 종국은 민주주의를 파괴해서라도 정국을 주도하겠다는 윤석열의 계엄령이었다. 민주주의 파괴를 정치의 방식이라고 여기며 자행한 윤석열과 그 공범들에 대한 파면과 처벌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파괴의 정치가 등장할 수 있는 배경이었던 극단적인 양당정치의 흐름 역시 함께 끊어내야 한다. 민주주의 실천에 무관심한 양당 아래서 극우가 성장했고, 계엄을 옹호하는 논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민주주의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 이 힘을 끊지 않고 내란은 끝나지 않는다. 서로를 반대하기 위해서는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기는커녕 듣기조차 하지 않는 극단의 양당정치와 결별해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 재건은 시민의 권리부터
윤석열이 구속 취소된 이후 광장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윤석열만을 위해 법리 해석을 다르게 한 검찰과 법원, 탄핵 결정이 길어질수록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파면 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는 헌법재판소를 바라만 봐야 하는 시민들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하루라도 빠르게 내란을 종식하고 파괴된 민주주의의 재건을 바라는 시민들의 바람과는 정반대의 검찰과 법원의 판단으로 다시 권력기구 개혁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은 한편으론 자연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민주주의를 세워나가기 위한 핵심 과제는 권력기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을 개혁한다고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는 이미 경험했다. 지금의 상황에만 압도되어 민주당을 다시 앞장세우고, 권력기구 개혁을 민주주의의 최우선 과제로 두는 일은 결국 다시 양당구도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여전히 민주당은 내란 종식을 위한 민주주의 과제가 아니라 본인들의 권력 우위를 점하기 위한 행보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추천한 정당은 차기 대선에 입후보를 못 하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지난 정치의 실패에 대한 반성 없이 국민의힘 제압에만 여전히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는 일은 권력을 가진 이들의 힘을 조정한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라 광장에 나온 시민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다.
윤석열 파면시키고, 가자 평등으로
애초에 윤석열의 계엄을 막고,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힘 자체가 민주당이나 국회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국민의힘의 표결 거부에 꼼짝도 못 하던 민주당을 제치고 국민의힘을 압박해 이탈표를 만들어 낸 것은 광장의 시민이었다. 윤석열 구속 또한 마찬가지다. 역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하게 한 힘은 공수처, 검찰, 법원이 아니라 이 내란을 끝장내고 새로운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윤석열 파면도 마찬가지다. 헌재에 윤석열 탄핵심판이 정치재판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원칙임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파면 결정은 당연한 결론이다. 헌재가 파면 결정을 망설인다면 우리가 윤석열 파면을 더욱 단호하게 외치며 지금 당장 파면 결정을 끌어내자.
또한 윤석열 탄핵은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작임을 기억하자. 윤석열은 물론,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낸 이 사회의 구조도 바꾸어 내자. 지난 3월 9일 시민 대토론회 <당신의 선택이 대한민국을 바꿉니다>에서 그간 윤석열 퇴진 광장의 시민 발언을 모아내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핵심 키워드로 평등과 노동을 꼽을 수 있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성별, 성적지향, 고용형태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에서 더이상은 살 수 없기에 세상을 바꾸자는 요구를 들고 광장으로 나온 것이다. 노동자 지위를 폭넓게 인정하고, 노조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노조법 2·3조 개정의 요구나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요구가 윤석열 퇴진이라는 계엄에 맞서는 요구로 가장 빈번하게 등장했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양극화된 정치가 망쳐놓은 민주주의 사회를 손보지 않고 윤석열만 도려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결국 이 폐허가 된 민주주의에서 윤석열 퇴진과 함께 새로운 민주주의를 써 내려가기 위한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 돌아오는 토요일이면 ‘가자! 평등으로 3·29 민중의 행진’이 열린다. ‘윤석열들 없는 나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노동이 존엄한 나라! 기후정의 당연한 나라!’로 민주주의의 길을 함께 내기 위해 준비된 자리다. 윤석열 퇴진시키고 평등과 존엄으로 채워갈 민주주의를 광장에서 함께 그려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