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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즐거운 물구나무] 성 평등적 주기도, 내 안의 가부장성을 넘어서야…

주기도문의 회오리가 1년여 동안 교계를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아갔다. 이 시대의 문화와 정서는 물론 신학적 성찰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새번역안을 세상에 내놓아 물의를 빚었던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반성하고 제 갈 길 찾아가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쓸데없는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여신학자들은 이때를 이른바 페미니스트들의 주의주장을 강하게 피력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이 사회에 가부장문화가 뿌리 깊게 반영되어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호기로 삼았다.

이미 여신학자와 여성교인들 사이에서는 주기도문 속에 사용되고 있는 '아버지'라는 호칭에 대하여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성 평등적 언어로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오던 터였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존재가 인간의 사고체계 속에서 제한되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를 통해서 내면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신앙을, 성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하나님께 온전한 고백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뿌리내리고 살고 있는 이 지구상의 어떤 문화권도 가부장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가 없고, 그 속에서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생활이 고정된 이분법적 성역할에 고착된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고착된 성 개념을 지닌 채 주기도문을 외우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남성과 동일시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주문처럼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남성성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여신학자들은 오래 전부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적 주기도문이 절실하게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한국의 여신학자들은 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아버지의'로 번역된 '당신의'라는 2인칭 소유격을 3인칭 소유격으로 대체하여 사용하자고 제안하였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이 그 어느 쪽도 아닌 성 평등한 개념으로 인식되는 한편, 하나님에 대한 존경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견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반론이 예상되지만, 교회 내에서는 하나님을 높임말인 3인칭의 개념으로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 특히 젊은 층은 기도에서는 물론 시, 찬양 등에서 이미 3인칭의 개념으로 '당신'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말이란 그 세대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주기도문에서도 이렇게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일단 하나님의 이미지를 이같이 성 포괄적인 호칭으로 바꿈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시몬느 보봐르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고 간파했듯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문화적 관습으로부터 길들여진 내안의 가부장성을 해체하는 것이 무엇보다 한국의 기독교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이라 생각한다.

◎ 주기도 한글개역판 - '아버지'라는 호칭이 2번 쓰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문제가 된 새번역안 - '아버지'라는 호칭이 5번 쓰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덧붙임

이순임 님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사무총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