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의 남성이 담배 때문에 농구 시합에서 졌다는 내용의 광고는 납득할 수 있다 쳐도, 22살의 여성을 모델로 하여 "다 좋은데 떨리는 첫 키스 때 / 담배 냄새는 너무 참기 힘들었다나? / 두고 봐 예뻐져서 더 멋진 애 만날 테니까 / 그래, 이젠 너랑은 끝이다"라는 카피를 붙인 보건복지부 광고는 실소를 자아낸다. 흡연 남성과 사귀었던 그 수많은 여성들은 그동안 후각이 마비되어서 담배냄새의 불쾌함을 느끼지 못했나? 덕분에 농구시합에 진 남성 흡연자의 얘기까지도 곱게 보이지 않는다. 남성이야 제 몸 하나 잘 건사하면 다행이지만, 여성은 흡연할 경우 관계까지도 단절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엄중한 경고인 셈이다.
게다가 텔레비전 광고까지 포함하면 보건복지부의 성차별적 시선을 좀 더 분명히 느낄 수 있다. "흡연, 세상과 이별하는 행위"라는 카피의 광고에서는 흡연 남성을 보며 안타까워 눈물 흘리는 여성, 흡연자인 남편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듯한 표정을 띠는 부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담배에 대한 여성의 권리란 간접흡연 하지 않을 권리 정도뿐인 것 같다.
물론 흡연을 권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담배를 재배할 때는 인산 비료를 뿌리는데 이 인산 비료에는 방사능 물질이 다량 포함되어 있어서, 실제 담배를 피우는 것은 방사능 물질을 배출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한 값싼 노동력과 싼 농지 확보 등을 이유로 제3세계 국가에서 담배를 재배하는데 이 과정에서 여성과 아동노동의 착취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금연'을 해야 하는 정치적 이유는 될지언정, '여성 흡연권'이라는 정치적 권리에 대한 반대 이유는 되지 못한다.
처음 담배가 재배될 때는 그것이 남성에게 더 어울리는(혹은 남성에게만 선택될 수 있는) 제품이라고 판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왜 담배만 그럴까? 커피, 감자 등의 작물을 먹을 때는 아무런 차별적 시선을 동반하지 않는데 말이다.) 분명 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여성의 건강'을 중심으로 이야기 될 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원래 '사회적 금기'라는 것은 그것을 뛰어넘느냐 못 넘느냐에 따라 권력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로 작용하는 것이다. '건강'을 핑계로 여성의 흡연은 적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은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이자 모독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광고를 만들라는 얘기냐?'는 보건복지부의 항의가 들리는 듯 하다. 답변은 물론 간단하지 않다. 흡연에 대한 권리 이전에 성역할을 고정해버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사회적 분위기를 개선하는 것은 모두의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덧붙임
레이 님은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