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권리는 인권이다” 93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와 95년 북경 여성대회로 주목받게된 이 ‘당연’한 구호에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시민․정치적 권리를 우선시하는 인권관 속에서는 공적 생활 속에서의 남성과 국가와의 관계를 겨냥하고 그 속에서의 남성 보호에 주안점을 두어왔다. 성(性)에 근거하여 인권이 갖고 있는 특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고, 여성에 대한 억압 지점으로서 가족과 가정이라는 영역을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인권’문제로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변화는 생겨났다. 여성에 대한 정치․경제적인 차별, 동등한 참여의 문제 등에 덧붙여 성에 기초한 폭력, 즉 여성에 대한 폭력이 주목받게 되었다. 한국사회도 마찬가지다. 불과 10여년전만 해도 의미를 갖지 못했던 ‘성폭력’이란 말은 폭발적으로 노출된 각종 성폭력, 가정폭력 사건과 이를 근절하려는 여성․사회단체의 노력에 도전받게 되었다. 93년 제정된 성폭력특별법은 95년 우조교 성희롱 사건의 패소를 계기로 97년 개정됐고, 그해 가정폭력방지법도 제정되어 여성인권 보호를 위한 법의 기틀이 놓여지게 되었다.
이후 여성인권의 지평은 확대를 거듭했다. 기업주에 대한 직장내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화, 남녀차별금지 및 구제에 관한 법률시행, 호주제 폐지운동 확산, 여성우선정리해고에 대한 집단소송, 여성노조 결성, 여성장애인연합 창립 등 새로운 영역의 여성운동이 등장했다. 2001년 ‘여성부’의 신설은 국가차원에서 여성인권을 보호․보장하는 기틀을 마련했지만 ‘성’을 따라 구조화되고 분배되는 세계를 비판하고 개혁하는 길은 멀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