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행복하지 않다, 고 생각한다.
그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사회생활의 고독감’인 것 같다. 직장 생활에서 나는, 혼자다. 지금까지 내가 항상 혼자였던 것은 아니다. 학교 졸업과 함께 시작한 사랑방 상임활동을 할 때에는 혼자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지난해부터 돋움활동을 하기 시작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부터, 나는 혼자가 되었다.
요즘 나는 새벽인지 아침인지 6시에 일어난다. 그것도 매일. 6시에 일어나기 위해서 밤 11시를 전후로 해서는 잠을 자려고 노력한다. 이를 때는 밤 10시부터 잘 준비를 한다. 사실 이건 조금 부끄러운 고백이다. 나는 내 취침시간이 밤 11시 전후라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다. 생각해보니, 고등학생 시절 이후부터 내 취침시간은 대부분 12시가 넘었다. 그리고 나는 그 밤 시간을 좋아했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혼자 조용히 하루의 끝을 예비하는 시간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인 것처럼 느껴졌다. 세상이 조용히 내 주위에 머무르며 나를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루를 끝내고서야 다음 하루가 또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작될 수 있었다. 그런데 밤 11시면 잠자리에 들어야 할 이젠 그런 밤 시간이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있다고 해도 너무 짧고, 그 시간마저도 다음 날에 대한 부담으로 항상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사랑방 상임활동을 하던 시절, 회사에 다니고 있던 친구 녀석이 밤 11시면 잠자리에 든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쌍하다.”고 말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나의 밤 역시 사라져버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나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생활하게 되었다. 무려 1시간 반(왕복 3시간)이 걸리는 출퇴근 지하철 안에는 항상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뿐만 아니라, 그곳은 일종의 전장(戰場)이다. 생존을 위한 전장. 어떻게 하면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을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매순간 벌어진다. 나 역시 그들을 냉소할 틈도 없이 그 전장에 뛰어든다. 유독 피곤하면서도 투쟁에 실패한 날은 나의 패배를 ‘이 세상과 더러운 사회와 이기적인 사람들 그 모두에 대한 증오와 저주’(좀 과장해서 말하면ㅋㅋ)로 만회한다. 어느 날은 내가 햄스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래 가지고서야, 인권활동가가 맞나.
직장에서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 분명 그 중엔 좋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관계는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지하철에서도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 떠돌아다니는 섬이다. 집에 가는 시간은 좀 빨라졌다. 사랑방 상임활동을 할 때에는 집에 가는 시간이 보통 10시가 넘었다. 이제는 소위 ‘저녁이 있는 삶’을 보내고 있지만, 매일 혼자 보내는 저녁은 ‘혼자임’을 더 느끼게 해주는 시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저녁은 가능성의 시간이 아니라 왠지 이른 취침시간을 예비하기 위한 시간이 되었을 뿐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다음 날도 반복이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다. 전에는, 연애야 그렇다 치고, 왜 그리 다들 하나같이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고 살려고 하는지 그 이유가 좀 궁금했다. 막연히 ‘사람들이 다 그러고 사니까, 사회가 그렇게 살기를 강요하니까’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그것뿐만 아니라 각각의 내적 동기들도 분명히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모두가 섬으로서만 존재하는 사회에서 그 섬들은 모두 외로운 거다. 아니면 현실적인 필요가 있거나. 하지만 섬과 섬을 이을 수 있도록 허락된 안정적인 방법도 별로 없다. 애인(유사 가족)과 가족이 되는 것 이외에는. 물론 누군가에게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는 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목표이자 욕망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다른 삶의 대안이 이 사회에는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결혼과 출산 말고는 다른 대안이 별로 보이지 않는 거다. 물론 그마저도 요즘엔 대안으로 삼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사랑방 같은 비교적 안정적인 공동체에 있었으면 그런 생각도 별로 안 하고 살았을 것 같다. 그리고 왜 그렇게 다들 “직장 때려 치워야지.”를 입에 달고 살면서도 꾸역꾸역 직장에 다니는지, 내가 그렇게 살고 보니 대충 알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굳이 좋은 점을 말한다면, 뭔가 사람들을 이해하는 퍼즐이 조금씩 맞춰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렇지만, 역시 이 생활이 쉽지 않다는 생각이 더 크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진짜 도저히 못 해먹겠다.’는 생각을 한다. 두 번을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빽빽한 출근 전철 안에서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다가, 돌아오는 퇴근 전철 안에서는 피곤에 절어 사람들과 세상을 증오하기를 무한 반복. 그리고는 매번 어둡고 텅 빈 집에 들어갈 때는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살고 있나.’ 하는 생각에 울컥. 그러다가 ‘지금이라도 직장을 관두고 사랑방으로 돌아갈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 때쯤…… 사랑방 20주년 행사가 있었다.
사랑방은 20주년을 준비하며 지난해부터 1년 넘게 사랑방 운동의 전략과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그 결론 중 하나가 ‘사람들의 구체적인 관계 속으로 좀 더 들어가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 그랬지. 최근 한창 심란하던 때, 사랑방 친구들이 조금은 ‘너무 비장하게’ 쓴 20주년 초대글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다시 떠올랐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관계 속으로. 그렇다면 나는 이미 들어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 보니, 내가 오랜 고민 끝에 직장 생활을 선택하고 돋움활동을 하기 시작한 데에는 그런 개인적인 목표도 있었다. ‘입장(立場)은 머리가 가 있는 곳이 아니라 발이 서 있는 곳’이라던 신영복 선생의 말이 생각났다. 사랑방에서 이제 하고자 하는 활동의 방향이 우리가 서 있는 입장을 좀 더 사람들 속으로 옮겨 보자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거기에 가 있는 것 아닐까.
돋움활동을 하면서 분명히 활동에 제약이 많이 생겼다. 하고 싶은 마음에 비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속상했던 적도 많았다. 그래서 활동의 한 형태로서의 돋움활동에 대해 의문이 늘어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직장 생활과 활동을 병행하고 있지만, 활동을 내 삶의 중심으로 잡고 가려고 하는 데 돋움활동이 적절한 형태일까 고민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 20주년과 함께 결정한 사랑방의 전망 속에서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생활/돋움활동을 좀 더 밀어붙여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사랑방에는 함께 할 돋움활동가 ‘동지’들도 있으니. 돋움활동가들의 경험이 사랑방의 새로운 전망에 유용한 자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로써 사랑방에서 아직 ‘실험 중’인 돋움활동가 제도가 조금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든다. 갈 길이 멀다. 걸으면서 생각할 수밖에.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