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제게 11월은 1년 중 가장 무색무취한 달이었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너무 춥고, 산을 바라보면 단풍은 다 떨어져서 약간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도 나구요. 그렇다고 12월처럼 송년 분위기에 취해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눈이 내리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공휴일도 없는 달이네요. 그런데 올해 11월은 정말 1년처럼 느껴지는, 무색무취는커녕 이렇게 스펙터클한 11월이 앞으로도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박근혜 씨 공로도 매우 큽니다.
시간 아니 세월이라는 걸 처음 생각하게 되었던 때는 대학을 졸업한 이후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뭐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정말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더군요.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하니까 이제야 그걸 느꼈냐며, 나이 들었다는 증거라고 하더군요. 많은 사람들에게 중고등학교, 대학교까지 경험들은 반복이라기보다는 매일 새로운 경험인 경우가 많고, 그런 만큼 기억과 경험의 양이 많아지고 나중에 돌아봤을 때, 실제 시간에 비해 긴 기간인 것처럼 여겨진다고 합니다. 뭐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세월이 훅훅 지나간다면, 외부의 자극을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넘겨버리면서 변화나 경험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네요.
저로서는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그 때는 과거를 돌아보는 일도, 미래에 대한 계획 이런 거에 별로 관심이 없었거든요. 좋게 말하면 현재에 충실했다고 할까. 요즘은 과거를 떠올리거나 나중에는 뭘 하게 될까 이런 생각들을 이따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살고 싶다거나 그런 건 아닙니다.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관념이 사람을 좀 겸손하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부질없는 미련이나 과도한 걱정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후원인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10월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11월 한 달 사이에 폭발했던 것 같습니다. 매일매일 우리를 경악케 했던 뉴스들이 쏟아지고,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서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을 시작했으니까요. 11월에 거리에서 보냈던 시간을 퉁칠만 한 과거의 경험이 흔한 일일까요? 교과서에서 봤던 87년 6월 항쟁 정도가 떠오르네요. 2016년도 이제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지만 앞으로 우리는 다시는 경험하기 어려울 우리들의 새로운 시간을 이제부터 열어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