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대선이 끝났다. 촛불 광장의 경험은 모두에게 언제 다시 겪을지 알 수 없는 특별한 시간으로 각인되었다. 하지만 대통령이 바뀐 지금 누구의 삶이 달라졌을까? 강렬했던 시간에 비해 그 결과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흔히들 2017년을 87년과 비교한다. 대중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민주주의를 진일보시킨 역사의 경험이 30년 만에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87년 7, 8, 9월 노동자 대투쟁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87년 6월 혁명은 정치적 변화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도 바꿔나가는 일이었다는 뜻이다. 이는 동시에 대중의 흐름과 운동의 흐름이 다르지 않았기에 조직화라는 성과를 만들어냈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7년 대선을 기점으로 광장의 촛불이 꺼지고 운동은 누구의 삶이 달라지고 있는지 쉽게 포착하지 못하고 있어 보인다. 인권운동의 과제도 여기서 시작한다. 지난 토론회는 그 과제들을 확인하고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지 이야기 나눈 자리였다
소위 '운동권'이 선도하게 두지는 않는, 하지만 광장을 주도하고 승리해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패배하는 경험을 가진 이들에게 인권운동은 어떤 응답을 할 수 있을까? 모두가 일상의 촛불을 조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갖게 되었다. 발제자 박진의 말대로, 대선이 끝나고 문재인 정부의 개혁적인 행보와는 별개로 지지자들이 민주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지지자들은 촛불 광장을 만들어 갔던 사람들이기도 하다. 광장의 동료 시민이 나를 비롯한 또 다른 동료 시민들에게 왜 가르치려 들고, 왜 너희만 올바르다고 생각하냐고 질문하는 것이다. 일상의 촛불을 조직하는 일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 수 있을까와도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에 또 다른 발제자인 미류는 평등을 키워드로 제시했다. 평등의 언어는 이명박근혜 시대를 겪으며 가장 후퇴하게 된 언어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평등의 후퇴는 단순히 정권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 땅의 역사가 반공의 역사로 점철되면서 이어져 온 흐름과도 이어져 있다. 지금 혐오 세력이라 불리는 이들 역시 그 반공의 기수였으며 지금은 반동성애를 내세우며 이 사회를 왜곡시키는 데 앞장서고 있다. 촛불로 만든 사회가 그 의미를 지키며 모두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평등의 가치를 세울 기회를 잃고 말 것인가 그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이다. 그 갈림길에는 지금 차별금지법제정의 문제가 놓여있다. 인권운동의 자리 역시 그 기로에서 혐오세력에 맞서 성소수자 운동과 굳건한 연대를 하는 것이 과제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 할 권리 역시 일상의 촛불을 켜기 위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토론회에서 지적했다.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노조조직이 잘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언어들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노동조합을 만들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며 사회적 투쟁의 경로를 확보하고, 이를 통해 다시 조직화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현실의 구조를 만들기 위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결국, 노동조합만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사회적 약자들이 이야기를 만들고, 뭉치며 연대가 가능할 때 인권의 현실은 조금 더 앞으로 나아 갈 수 있는 길이 보일 것이다. 그 외에도 분단의 현실이 우리의 일상을 여전히 흔들고 있지만, 기존 국제인권 규범의 피해자 대응 이상의 방향이 나오지 못하는 현실, 인권이 제도화되면서 인권의 언어가 확장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자는 이야기들이 토론회에서 나왔다.
이제는 세상이 천지개벽하듯 좋아졌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이라 불리는 시기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내 드러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2017년 촛불이 '나'의 일상을 바꿔놓기 위해서 인권운동 역시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찾아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등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기로에 서 있는 성소수자든, 일상의 광장이 열리지 않는 노동자든 그들의 목소리 또한 함께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목소리임을 확인하자. 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광장을 열어나가는 것이 촛불로 달라진 사회에 '운동권'이 응답 할 수 있는 첫 단추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