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피의자 인권보장을 위한 실질적 조치를 취하라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치사 사건과 관련해, 김정길 법무장관과 이명재 검찰총장이 옷을 벗었고, 김대중 대통령도 5일 대국민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부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고 담당검사에 대한 사법처리방침까지 밝힌 것은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당연한 조치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명재 검찰총장은 사표를 제출하기 전 "수사관행과 제도를 과감히 개혁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이 총장의 발언이 여론무마와 사태봉합을 위한 검찰의 의례적 표현이 아니길 바란다. '이제부터 수사를 어찌 하란 말이냐'는 볼멘 소리가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우리는 경계하며, 그런 검찰의 태도로는 국민의 불안감을 결코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경고한다.
정부는 반인권적 수사관행을 개혁하고 감시할 수 있는 제도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수사관들이 끊임없이 '가혹수사의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은 피의자의 자백에 의존하는 수사관행 때문임이 수도 없이 지적된 바 있다. 밤샘조사를 밥먹듯 하고 피의자를 협박·폭행하는 수사방식은 모두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수사편의주의에서 비롯되는 일들이다.
이참에 밤샘수사가 '고문'임을 명백히 인식하고 금지하라. 중요 사건 발생 때마다 불이 환히 밝혀진 검찰청을 보도하던 언론은 그것이 고문행위임을 명시하라.
피의자 신문과정에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법률로 명문화하라. 모든 피의자가 변호인을 동석시킬 수 없다 하더라도, 검찰 수사에 공식적인 감시자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피고인이 가혹행위를 호소할 경우 법원이 이를 적극 수용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라. 법원은 무리하게 받아낸 자백이 소용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검찰이 증거에 기반한 과학적 수사방식을 스스로 개발하겠는가. 외부의 견제와 자극이 채찍질이 되야 한다.
고문 등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입법을 서둘러라. 고문 가해자가 버젓이 공직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수사기관 종사자들의 무디고 무딘 인권의식은 고문 가해자에 대한 관용과 불처벌에 있었음을 좌시하지 말라.
아울러 국가인권위에 당부한다. 기존 국가권력의 남용이나 책임 방기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임무이다. 기존의 국가기관을 제대로 감시·견제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내부적 반성장치'로서 설치된 국가인권위의 존재의의이다. 서울지검 사건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선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기회에 검찰과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자행된 인권침해 실태를 전반적으로 조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종합적인 피의자 인권보장정책을 마련·제안하고 그것의 실현을 감시해야 한다. 게으른 감시와 견제는 가해기관과 다를 바 없는 인권침해의 공범이 되는 길임을 명심하라.
고문에 의해 숨져간 생명을 '피의자 인권보장을 위한 조치'를 통해 기억해야 한다.
200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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