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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으로 읽는 세상

주민등록제도가 문제, 그러나 ‘문제’는 그 이상

주민등록번호가 드디어 ‘문제’가 됐다. 지난달 밝혀진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후 주민등록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있을 때마다 정보인권운동단체들이 문제를 지적했으나 정부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이제 대통령도 대안 검토를 지시한다. 사람들에게 낯선 단어였던 ‘정보인권’도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런데 주민등록번호제도에 대한 대안 검토를 지시하는 대통령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대안”을 찾으라고 하는 걸 보면, 여전히 무엇이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을 위해 개인을 식별하나

주민등록번호는 그 자체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번호가 아니다. 나이, 생일, 성별 등으로 조합된 번호다. 2012년 한국인터넷진흥원은 여러 유형의 개인정보 공개에 대한 거부감을 조사했다. 나이, 생일 등에 대한 거부감은 다른 정보들보다 낮은 편이었다. 그런데 이 정보들로 조합된 번호인 주민등록번호 공개에 대한 거부감은 97.2%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민등록번호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다른 정보와 연결될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국가가 보증하는 개인 식별 번호다. 개인을 특정해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고 어떤 권리로부터 배제할 수 있고, 통장에서 돈이 나가는 것도 보증하는 번호다. 이것은 위험한 정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안전을 핑계로 만들어진 정보다. 박정희 정권이 주민등록제도를 만든 것은 ‘양민’과 ‘간첩’을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불심검문에서 경찰은 주민등록번호를 확인한다. 감시사회의 토대인 것이다. 국가는 안전 보장의 주체를 자임하며 정보를 통한 권력을 행사한다. 정부는 위변조를 막겠다며 전자주민증 도입 시도를 포기하지 않는데, 국가가 집착하는 ‘안전’이야말로 이번 사건과 같은 위험을 불러온다.

주민등록번호를 발행번호로 대체하자는 대책이 정부에서 검토되고 있다. 우리를 증명하기 위해 어떤 번호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정보를 담지 않은 무작위 일련번호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번호조차도 국가가 개인을 식별하려는 목적을 바꾸지 않는다면 주민등록번호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국가가 발행하는 번호라는 비물질적인 정보는, 국가 안에서 살아가는 물질적인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국가가 국적이 없는 자를 추방하거나, 나이가 어린 자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사상이 불온한 자를 색출하려는 권력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어떤 번호도 대안이 될 수 없다.

정보를 탐하는 기업

국가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번 사건은 카드사가 수집한 정보를, 카드사로부터 카드 부정사용방지시스템을 개발해달라는 의뢰를 받은 신용평가사 직원이 빼돌린 사건이다. 정부는 해당 직원을 처벌하고, 재발 방지를 모색하겠다고 하지만 그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카드회사가 수집한 고객 정보를 불법으로 수집한 직원은 처벌받지만, 카드 회사가 정보를 수집한 것은 합법적이니 문제가 없을까? 법으로 수집할 수 있는 정보를 제한한다면 문제는 사라질까?

예비 소비자에 대한 정보, 노동자에 대한 정보들은 기업 경영의 필수 요소처럼 여겨진다. 정보기관이 트위터를 감시하거나 이메일을 감청하는 것은 그나마 ‘문제’로 인식되지만 기업이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하는 것은 정당한 영리 추구 행위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보 제공에 동의한 개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경제부총리의 발언도 튀어나온 것이다. 정보를 요구하는 권력에 대해 문제 삼을 생각이 없으니, 달라는 대로 준 걸 문제 삼게 되는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활동들이 시장화, 기업화되면서 정보의 취급과 관리는 마치 기업 고유의 업무처럼 여겨지고, 기업이 자신의 울타리 안에 정보를 가두어 독점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그러니 개인정보를 사고파는 범죄의 틈새시장도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기업의 이윤을 만드는 재료가 되어 사유화되지만,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정보를 활용해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며 치하한다.

정보를 이윤 창출의 재료로 삼는 것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 한, 일부 정보의 제한은 ‘정보인권’의 온전한 실현에 이르지 못한다. 정부가 민간영역의 주민등록번호 사용을 제한하겠다고 했으나, 이미 금융기업들은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법 역시 기업의 입장을 우선시할 것이다.



‘정보’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정보를 숨기고 보호하는 것으로 정보인권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그저 꽁꽁 싸매서 개인 안에만 있을 것이라면 그것은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은 개개인의 정보가 끊임없이 자발적으로 유포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각종 인터넷 서비스는 ‘감시’를 대가로 무료로 제공된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내게 필요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정보를 흘린다. 이걸 두고 정보인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만 할 수 없다. ‘소셜감시’는 적어도 감시의 주체와 대상이 일방적인 권력관계에 놓이지 않는다.

정보는 내가 누구인지를 설명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끊임없이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정보는 재구성을 위해 사용되는 중요한 재료다. 네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응원하기 위한 조건이기도 하다. ‘나’와 ‘너’의 관계가 특정한 정보를 어떤 맥락에 놓는지에 따라 정보의 의미는 달라진다. ‘정보’는 그 자체로 본질적이지 않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한다는 정보는, 쇼핑몰에는 ‘미용에 관심 있는’으로 읽힐 것이고, 국방부에는 ‘군 복무 의무 없는’으로 번역될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성별 확정을 강요당하는 폭력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특정한 정보 때문에 우리가 위태로워질 때, 그것은 그 정보 때문이 아니라 해당 정보를 통해 우리를 지배하며 위험을 가중시키는 힘 때문이다.

정보인권은 나의 정보에 대한 권리가 아니라, 정보를 통해서 내가 원하는 관계를 맺을 권리다. 그것은 정보의 맥락을 만드는 힘이 정보기관이나 기업이 아닌 우리에게 있을 때 실현될 수 있는 권리다. 지금 그 힘을 휘두르는 정보기관이나 기업의 정보 수집을 제한하는 것은 정보인권 실현을 위한 첫걸음이다. 다만, 정보들에 대해서 멋대로 맥락을 만들어내며 우리의 삶을 휘두르는 권력을 겨냥하지 않는다면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