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일숙입니다. 인권영화제 개막쯤에 인사를 드리고 이제 다시 활동가편지를 씁니다. 오늘 또다시 비가 억수같이 내립니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광선이며 괴음이 신기해서 창가에서 천둥번개를 기다리던 날도 있는데, 오늘은 폭음처럼 터지는 천둥번개가 무섭기만 합니다. 어디서 어떤 사고가 벌어져 힘없는 사람들이 다칠까 두려워, 편히 쉴 맘도 갖지 못하겠네요. 큰일 없이 무사히 이 태풍이 지나가길 바라야죠. 4대강 사업 중단으로 기뻐 날뛰고 싶어라 강가를 걷거나 산을 오르는 것이 여름휴가 코스인데 올해는 4대강 사업으로 강으로도 산으로도 떠날 생각이 안 났습니다. 4대강 사업 현장을 목격하면 화나서 술 퍼마시며 괴로워할까봐서요. 그 꼴 보기 싫어서 해외로 튀고 싶었죠. 마침 일본 홋카이도에 있던 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영인이 다녀가라고 국제전화로 저를 꼬시기도 했구요. 고민하다 결국 금강과 영산강 보를 둘러보고 왔습니다. 다녀와서는 용산 철거민 구술집 ‘여기 사람이 있다’ 작업을 함께 했던 연정과 새로운 사람들과 ‘4대강 구술집’을 내기로 했습니다. 4대강 주변에 쫓겨나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던 아름다운 강들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만드는 4대강의 실체를 구술로 남겨 놓는 것이 필요해서 시작했죠. 총 6명이 각자 강 하나를 맡아서 그 지역의 농민 또는 노동자를 만나 인터뷰를 해요. 저는 팔당 유기농 단지에서 농사를 짓고 계시는 분을 만나고 있습니다. 그분은 23년 전, 팔당에서 유기농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해왔던 농민입니다. 팔당에서 유기농업을 한다는 것. 서너 번의 인터뷰로 그 노고의 속사정을 알아간다는 것이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꼭 남겨놓아야 할 역사였습니다. 물론 팔당 공동체에서는 그동안 해왔던 작업들을 자료로 상세하게 남겨 놓았고, 다른 많은 단체와 연대하고 계십니다. 치열하게 농사짓고 공동체의 희망을 일궈 오셨던 거죠. 팔당 농민 분들을 만나면서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쓰고 버리는 수돗물은 팔당 주민들의 삶을 쥐어짜낸 물이었습니다. 땅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일하면서 살 수 있는 대안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해 피와 땀으로 농사를 지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유기농을 부정당하고 무시당하니 그 억울함이 가슴을 팝니다. 한 실학자의 글처럼 ‘송곳 꽂을 땅도 없는 백성’들의 가죽을 벗겨가고, 피를 뽑아 쓰는 것이 바로 지배자들이 부자가 되는 요령이겠지요. 4대강 구술 책이 탈 없이 출판되어 많은 사람들이 강에서 살아가는 농민들과 노동자들을 알아주길 바라지만, 4대강 사업이 중단되어 책 출판이 무산된다면 더 없이 기쁠 것입니다. G20을 노려보는 다른 생각 - 9월 29-30일 찾아가는 인권영화제 ‘반딧불’ 지난 주, 종로경찰서에 가서 29일, 30일 하루 10시간 씩 이틀 집회신고를 냈더니 담당 경찰관이 “힘들지 않으세요. 좀 시간을 줄이시면 어때요?” 합니다. 힘들죠. 마음 같아서는 아예 집회를 하고 싶지 않은데 말입니다. 많은 활동가들이 G20을 지켜보면서 긴장 하고 있습니다. 대략 예측되기는 하지만 정부가 어떤 술수를 부릴지 걱정이 많습니다. 비열한 정부의 치졸한 행보는 도를 넘을 것이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이 잘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죠. 논의를 거듭하며 지혜를 모으지만 뾰족한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무기력하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인권영화제는 보신각에서 “찾아가는 인권영화제 반딧불”을 하기로 했습니다. 집회 신고내고 집회처럼, 영화제처럼, 축제처럼 이것저것 마당에 펼쳐 놓으려구요. 다른 단체도 오라고 해야겠죠. 이것저것 문제가 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저녁 보신각 앞에서 볼만한 영화를 보면서 G20의 허구를 파헤치면서 G20에 대한 “다른 생각” 알리려도 해요. 사실 몇 나라 수장들이 모여 봐야 세계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는 안전장치나 수리해 놓고 “우리도 나름 애썼다”며 발뺌하고 내뺄 게 뻔하죠. 세계를 다 구할 것처럼 연기를 해봐야 그들이 하는 일이란 귀한 혈세를 바닥나도록 써 없애는 것이죠. 이미 연기하는 정치인들의 실체를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테니 G20의 허구도 드러날 것입니다. 이날 종로 주변을 지나시면 한 번 들러주세요. 이주/노숙/노점/불신검문 등 집중해야 할 현안들을 묶어서 그 주제를 담은 영화를 볼 것입니다.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칠 것입니다. 보신각이 ‘신’을 중시하여 보신각이고, 햇볕이 들지 않는 가난한 사람에게도 종소리를 듣게 하여 ‘복’을 전달하고자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했던가요. 우리도 한번 ‘인권각’을 크게 20번 쳐 보면 어떨까요? G20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요. 지난 금요일. 늦은 밤에 집에 들어오면서 집 우체통을 보니 2층에 사는 주인집 작은 딸에게 온 편지가 하나 있었어요. 파란색 편지 봉투에 자필로 쓴 이등병의 편지였습니다. 밤새 비가 내려 잉크가 번질까봐 대문 앞에서 그 편지의 수신자 이름을 부르며 ‘편지 왔습니다’라고 외쳤어요. 수신자가 작은 노란 꽃무늬 원피스 잠옷 바람으로 대문까지 달려 내려왔어요. 이등병의 편지를 받고는 달빛처럼 환하게 웃으며 깡충깡충 그 자리에서 뛰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면서요. 기쁨은 스미듯이 제게도 번졌습니다. 진돗개 쫄쫄이에게 같이 편지를 읽어 보자며 2층 현관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것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만나는 힘들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기쁨 날들이 자주, 아주 자주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에 늦게야 잠이 들었습니다. 힘들 날들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기운내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늘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2010년 9월 5일_ 김일숙 드림. |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