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단을 2004년에 다시 들렀습니다. 고용허가제를 만든 정부는 이른바 ‘불법체류자’들을 고용허가제 시스템에 편입시키기 위해 조건부 합법화라는 당근과 함께 단속과 추방이라는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명동성당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에 반대하며 농성을 시작했고, 그 와중에 샤멀 타파 농성단 대표가 강제출국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인권단체들은 각 지역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들과 함께 단속?추방 관련 인권침해 실태조사를 진행했고 그 중 한 지역이 마석이었습니다.
조사 중에 한 집에 들렀는데, 현관과 거실이 너무 눈에 익어서 웬일인가 했지요. “오래간만이에요.” 한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가 반갑게 인사를 걸어 와서 그제야 몇 년 전 생각이 났습니다. 건네주는 앨범을 열어보니 몇 년 전 그날의 뻑적지근한 술자리가 기념사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요. 그때 만났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은 몇 명 안남아 있었습니다. 단속되어 추방당한 사람도 있고 자진해서 출국해 호주나 일본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최근 이주노조 집행부 3명이 잡혀서 강제추방 당했습니다. 활동가들이 외국인보호소 정문에서 호송차를 가로막자 출입국 직원들은 건물 뒤로 돌아가서 철조망을 끊고 인천공항으로 이들을 빼돌렸다 합니다. 국가라는 것이 평소에는 법질서의 엄정함으로 자신을 그럴듯하게 치장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한없이 ‘쪼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쪼잔함’이 가능한 것은 국적과 체류자격을 따져 밥그릇 나누기를 거부하는 많은 한국인들이 든든한 뒷배를 이루기 때문은 아닌지요? 신자유주의 세계화, 노동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한 국경의 통제, 혈통주의와 민족주의, 두 국민 전략, 분할과 통제, 전지구적 시민권 따위의 말은 중요하지만 머리가 아픕니다. 서로의 다른 점을 견딜 줄 아는 이해, 절실한 필요를 알아서 채워줄 수 있는 연대가 진정 그립습니다. 헛된 희망이라고 여겨도 그리운 것은 그리운 법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터져 나올 때마다 그 겨울날 먹었던 비린내 나는 생선카레를 떠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