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에는 박주희 씨를 만났다. 그는 대구에 살면서 한겨레신문 기자를 하고 있다. 그는 지난 1997년부터 인권운동사랑방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뒤에 감옥인권팀과 인권영화제팀에서 자원활동을 했고, 한겨레신문에 입사한 뒤부터는 후원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대구 올 일이 있으면 언제고 연락하란다.
□ 인권운동사랑방과는 언제 인연을 맺었나요?
손가락을 한참 꼽아봤더니, 그게 1997년이었네요. 6월 항쟁 10주년 기념행사 때니까요.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기념행사 때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내건 윤금이 언니의 처참한 사진을 봤습니다. 충격이었구요, 그 충격으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제 발로 사랑방에 걸어 들어갔습니다. 2001년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오면서부터 후원을 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사랑방을 드나들며 나름 자원 활동을 좀 했었네요.
□ 그간의 근황을 말해주세요.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고 있어요. 특히 지난해 결혼 이후 어떻게 사는지요.
평화롭게 살고 있습니다. 한겨레신문 지역기자로 이런저런 지역 소식을 취재하고, 가끔은 참담한 어린이 성폭력 사건 같은 것도 취재하면서요. 지난 가을에 결혼한 이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적응하고, 갑자기 고딩 학부모가 되는 바람에 스스로 `엄마'로 변신하는 기간이 꽤 길었구요, 지금은 안정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가끔씩 `말도 통하고 마음도 통하는 사람들'이 그리울 때가 있지만,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습니다.
□ 후원인으로서 인권운동사랑방에 바라는 게 있다면? 사랑방이 후원인에게 친절하지 못한 부분도 있는 것 같은데….
후원인이면서 제가 하는 일에 비춰보면, 이런 점이 좀 속상하더라구요. 사랑방이 인권운동 영역에서 차지하는 무게에 견줘 칭찬을 좀 덜 받는다고나 할까요. 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앞장 선 일에는 빛도 좀 나고 해야 하는데, 인권문제가 생기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제 몫을 하면서도 칭찬받을 때는 뒤로 밀려나 있는 느낌요. 다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열정만큼, 활동하는 만큼 많이 알리고 정당하게 평가받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있냐.'고들 하실지 모르지만, 그런 칭찬과 좋은 평가가 결국 사랑방이 해나가는 인권운동의 힘이 되는 거 아닐까요.
□ 사랑방의 최근 활동 중에서 기억하는 게 있다면?
인권영화제죠. 물론 대구에서는 볼 수 없어서 아쉽지만, 영화 프로그램 보니까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많더라구요. 영화제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상영장소를 찾지 못해서 고민하고 번역 자원활동가들이 밤새 작업하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대학 때 학교에서 영화제 버튼 판매하던 기억도 나구요.
□ <인권오름>에 대해 한 마디, 따끔한 조언을 한다면.
한겨레신문이 단골로 꾸중을 듣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만, <인권오름>에 실리는 글을 읽다보면 `생각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글쓴이의 주장이 분명하다 보니 그렇겠지만, 지나치게 생각을 몰아 부친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전반적인 편집도 너무 직설적이라 부담이 팍팍 올 때가 있어요. 부드럽게 표현해도 느낌이 오는, 그런 편집이면 더 좋겠습니다. 그리고 편집에 색깔을 좀 더 적극적으로 써서, 알록달록 시각적으로 읽고 싶은 <인권오름>을 만들면 좋겠습니다.
□ 사랑방의 활동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생각하면 마음 든든합니다. '인권'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한결 같이 일하는 활동가 분들을 보면, 마음 든든합니다. 언제나 힘내시라는 말씀드리고요, 든든한 후원인들이 버티고 있으니 언제라도 손 내밀어 주시라는 말씀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