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느 활동가가 내게 물었다. 사랑방에서 활동한지 얼마나 되세요? 3년 조금 넘었어요. 오래 되셨네요. 햇수만 채웠지 내용이 없어요. 아까 말씀하시는 거 보니까 그렇지 않던데요. 아니에요 정말 내용이 없어요 -_-
처음 사랑방에 들어왔을 때 나의 걱정은 과연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사랑방 활동을 할 수 있을까였다. 오랜 기간 활동을 한다는 건 내 마음이 한 순간의 호기심이 아님을, 나도 연륜 있는 활동가가 되어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쌓여갈수록 뭔가 이뤄내고 있는 거 같아 내심 뿌듯하고 좋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게 아니란 걸 알았다. 운동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시작한 건 아닌 거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내공이 생기는 건 아니었다. 내 안에 뭔가 부족한 것 같은 생각이 들다보니 요즘은 그런 질문들이 점점 부담스러워진다. 활동 3년차가 어떤 내용과 깊이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은 없지만 3년이라는 시간은 내가 다른 선배 활동가에게 어떤 기대를 가지는 것처럼 사람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수준이 있겠구나’ 라는 기대를 가지게 하는 기간인 것 같다.
이러한 기대를 채워 줄 만한 알맹이가 내 안에 없다는 것도 고민이긴 하지만 그보다 이런 나의 부족함이 다른 활동가들에게 민폐로 작용하는 건 아닌 지 더 걱정이 된다. 그렇게 되면 나의 테두리를 벗어나 전체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활동이란 것도 서로 맞물려 가다 보니 내가 부족하면 다른 누군가가 그걸 채워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능력은 부족한데 해야 하는 건 있으니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같이 일하는 활동가들이야 드러내놓고 뭐라고 하진 않지만 그래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다. 생각해보니 이것 말고도 미안한 게 많다. 남들은 밤새워 촛불시위 참석하는데 집에서 잠이나 쿨쿨 자고, 남들은 밤늦도록 회의 하는데 난 먼저 빠져 나오고 …… 창피해서 차마 다 열거할 수가 없다. 활동보다는 내 자신이 더 우선인 이런 선택을 할 때마다 ‘그럴 수도 있지’라고 위안해 보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마음 한 켠에 이런 창피함과 미안함을 안은 채 난 사랑방 활동을 한다. 하지만 ‘앞으로도 부족한 나를 계속 참아주세요.’라고 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차곡차곡 알맹이를 채워나가야 하리라. 어떤 알맹이를 채워야 할 지 현재로선 잘 모르겠지만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랑방 사람들이 옆에 있기에 하나 둘 채워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설령 욕심껏 다 못 채운다 하더라도 그 때 그 때 채운 만큼이라도 나누며 살아야겠다. 최소한 이 정도는 해야지 내 부족함을 채워주며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사람 된 도리를 하는 거 아닐까 싶다.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