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국내외적으로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꾸준히 이뤄져 왔던 상황에 반해, 우리가 ‘북 인권’에 관한 언급과 공론화에 신중을 기해 온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객관적인 사실 확인의 어려움. 둘째, 북한인권에 대한 문제제기가 제국주의 세력과 남한 내 지배세력이 벌이는 정치공세에 포섭될 가능성이 농후했다는 점. 셋째, 한반도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 등이 그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개입과 더불어, 북한 인권을 둘러싼 ‘공론의 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라 여겨집니다. 그것은 첫째, 북한 인민들의 호소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둘째, 북한인권 논의가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것을 막고, 그것이 북한 인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올바른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 셋째, 한반도 인권의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 때문입니다.
1. 편견에 대한 경계
북한인권 문제를 바라보기에 앞서 경계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인권적 질서(잣대)=자본주의적 질서(잣대)’라는 혼동과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자본주의적(혹은 자유주의적) 잣대로 북한사회를 판단하고,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적 잣대와 방법’일 뿐이지, ‘인권적 잣대?방법’으로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체제의 금과옥조나 다름없는 ‘대의민주주의’ 원리조차도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권리를 억누르고 제한하는 방향으로 기능한다는 사실을 최근의 ‘탄핵소동’ 과정에서 우리는 피부로 절감한 바 있습니다. 또한 자본주의적 질서를 이식함으로써 북한 인민의 배고픔과 두려움을 달래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그것은 착각이나 기만입니다. 시장경제의 원리가 그 사회의 취약계층의 인권을 더욱 열악한 처지로 내몰고 있다는 점은 남한의 현실 속에서 충분히 경험해 온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인권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인권문제의 끝없는 양산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식(자본주의적) 잣대와 해법이 오히려 북한 인민들을 더 깊은 나락으로 내몰 수도 있다는 점을 충분히 경계하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해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2. 문제 나누기
제기되고 있는 북한 인권문제는 아주 다양합니다. 식량권, 전쟁에 대한 공포, 재중 불법 이주자 인권 문제, 형벌의 남용, 표현의 자유, 사회적 차별, 여성과 아동의 인권 등이 그 주된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기존의 문제제기 집단들은 다양한 문제를 뭉뚱그려 ‘체제의 문제’로 몽땅 환원해 버리는 시각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시각은 “북한 인권문제=북한체제의 문제”→“북한 인권문제의 해결=체제 전복”이라는 단순도식만을 되풀이 할 수 있을 뿐이며, 문제의 성격에 따른 다양한 접근과 해결방식의 모색을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권문제들은 그것이 초래된 원인에 따라 몇 개의 범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체제(북한식 사회주의체제)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라 볼 수 있는 반면, 어떤 것은 국가권력의 일반적 속성이나 사회적 관용의 수준, 제3국과의 관계와 국제적 환경 등에서 문제의 근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여성에 대한 억압, 구금시설의 인권문제 등은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보다도 전통적 가부장질서나 국가권력의 보편적 억압성 등에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으며, 전쟁에 대한 공포는 대미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국제적 질서에서 기인하는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별로 각기 상이한 경로와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북한 인민의 인권신장을 위한 실질적인 접근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객관적인 사실입증의 여부 △국제사회의 직접적인 지원(외부의 직접적 개입)이 가능한지 여부 △문제의 광범위성 여부 등 몇 가지 다른 기준에 의해서도 문제를 나눠볼 수 있고,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나눠봄으로써, 우리는 각각에 걸맞은 해결방법과 개입의 수위를 적절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3. 무엇부터? 어떻게?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점은 북한 인민들이 무엇을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느냐는 점입니다. 현재로선 북한의 식량부족과 그에 따른 기본생존권의 위협부터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의 일이라 생각됩니다. 북한 인민의 열악한 식량권 상황은 이미 객관적으로 입증된 문제이며, 세계식량계획의 지원대상이 650만여 명에 달하는 등 매우 광범한 대상이 고통받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는 국제사회의 직접적 지원을 통해 어느 정도의 문제해소가 가능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북한 인민의 1차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차원에서 뿐 아니라, 북한사회의 자생력 회복에 기여함으로써 인권신장을 위한 중요한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물론, 경제적 여건의 미비가 인권을 유보하거나 제한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북한의 자생력 회복은 외부의 경제적 지원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으며, 인민들의 자주성과 창조성이 최대한 발현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공동체 내의 연대의식 강화, 상호비판의 활성화 등이 뒷받침될 때, 북한 사회의 자생력은 더욱 튼튼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북한 당국은 인민민주주의의 강화와 여타 인권의 신장을 위한 노력에 더욱 매진해야 할 것입니다.
식량난의 해소와 더불어 시급한 것은 한반도의 전쟁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입니다. 전쟁상태 혹은 준전시상태가 한 사회 전체의 인권을 위협하는 것이자, ‘인권의 보장’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은 특히 북한 당국과 인민들의 주체적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국제사회의 실질적인 개입과 노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한반도의 일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해야할 역할은 한반도 평화조성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식량난에서 벗어나고자 중국으로 이주한 북한 인민들의 인권상황도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인권상황을 개선하지 않고 있는 중국 정부의 책임이 막중한 사안이지만, 탈북자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세력들의 책임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최근 ‘북한자유법안(혹은 북한인권법안)’을 의회에 상정한 미국은 탈북행렬을 부추김으로써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그것이 문제해결의 더 큰 걸림돌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재중 탈북자 문제는 현대사회에서 보편화된 문제인 ‘이주노동자 인권’ 보장의 관점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불필요한 정치적 채색을 피하면서 재중 탈북자들의 처지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북한 인권 문제와 관련해 가장 민감한 이슈로 제기되어 왔던 것은 구금시설의 인권문제(이른바 ‘정치범수용소’ 등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워낙 정치화된 탓에 의혹과 공방만 난무할 뿐, 사실확인을 위한 접근 자체가 어려운 사안입니다. 이 문제의 열쇠는 1차적으로 북한 당국이 쥐고 있습니다. 즉 외부의 접근과 조사를 수용함으로써 문제의 존재여부를 공개하는 것이, 의혹의 해소든, 사실의 확인이든, 소모적인 공방을 일단락시킬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유엔의 대북인권결의안에서 드러나듯, 국제사회가 공정성과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북한만을 문제삼는다면,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 혹은 제3자의 공정한 조사를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북한당국이 제3자의 조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문제제기의 공정성과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문제제기 국가들이 자기들조차 국제인권규약 가입을 회피하면서, 북한 당국만을 상대로 국제적 인권보장절차의 수용을 요구하는 것은, 그들의 문제제기 자체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할 뿐이라는 점을 확인시켜 줄 따름입니다.
구금시설의 인권문제와 같은 보편적인 인권사안에 있어서는, 국제사회가 공동으로 인권개선을 도모하는 방향에서 문제해결이 이뤄져야 합니다.
4. 국제사회와 한국정부, 남한 인권운동의 역할
인권문제 해결의 주체는 해당국 인민들이며, 국제사회는 그것을 보조하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는 인권문제 해결이라는 명분 아래, 외부적 제재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경제적 제재일 수도 있고, 심지어 군사적 개입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미국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수십년 동안 유지해 왔으며, 또한 이라크의 예에서와 같이, ‘인권개선’을 명분으로 군사침략을 정당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제국주의적 방식의 개입은 그 자체로 반인권적 방식이자 인권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고려할 가치조차 없습니다.
국제사회가 맡아야 할 기본적 역할은 북한 당국과 인민 스스로 인권신장에 매진할 수 있도록 외부적인 상황과 조건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북한의 식량난 해소에 도움을 줌으로써 인권신장을 위한 토대조성에 기여하는 것, 한반도를 짓누르고 있는 전쟁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남북한 모두 인권신장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 그것은 국제사회만이 해낼 수 있는 몫입니다.
한편, 인권 문제제기를 주도하고 있는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에게는 자기반성적 태도가 요구됩니다.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일방적 비난에 치우쳐온 인권논의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확보할 수 없습니다. 세계 제일의 패권국을 문제삼을 수 없는 인권논의라면, 그것은 이미 공정성을 잃은 잣대로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한 정부는 북한인권 문제가 미국이 아닌 바로 우리의 문제이며, 우리가 당사자라는 점을 국제사회에 거듭 확인시켜야 합니다. ‘인권을 수단화하는 정치공세’에 반대하면서,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과 한반도 평화정착'을 호소하는 한편, 북한 당국과의 ‘인권대화’를 적극 시도하는 것이 남한 당국에게 요구되는 역할입니다. ‘인권문제’는 남북한 당국 모두에게 아킬레스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의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인권보장 체계’에 있어 양자의 거리를 좁혀 나갈 수 있는 길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합니다.
남한 인권운동의 주체들은 장기적으로 한반도에서 실현되어야 할 인권보장의 체계를 구상하는 한편, 민간차원의 ‘남북 인권대화’에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상호소통과 이해, 비판과 반성은 반세기가 넘는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면서 한반도를 실질적인 인권실현의 장으로 만들어내는 작은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