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이었습니다. 사촌 동생이 허리디스크 파열로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젊은 나이라는 사실도 안타까웠지만 군복무 이후에 생겨나고 악화된 디스크라는 본인과 가족들의 심증 때문에 촛불집회를 자주 참가하는 제가 공연히 미안해지고 머쓱해지더군요. 사촌 동생은 여러분처럼 의경으로 군복무를 했었거든요.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이 전 의경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나서 건강한 몸으로 제대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결과인 듯 보입니다. 과도한 시위 대응으로 인해 근무시간은 지나치게 길어지고 근무라고 하는 것도 몇 시간씩 소변도 참아가며 움직이지도 않고 꼿꼿이 서있거나 헬멧이나 방패를 깔고 쪼그려 앉아 대기하는 게 고작이죠. 그뿐인가요. 좁은 버스 좌석에서 쪼그려서 잠을 자거나 매연 가득한 도로 옆에서 도시락으로 끼니를 채우는 일이 일상이 되어버린 여러분들의 건강과 인권침해 상황은 전쟁세대가 강조하는 젊은 시절의 사서하는 고생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어 보입니다.
제 사촌동생처럼 의경복무 후 허리의 병을 안고 살아가는 건 어쩌면 소수의 경험만은 아닐 테죠. 그 숫자에 다른 신체부위의 병, 마음의 병까지 안고 살아가는 사람까지 더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극소수가 아닐까 싶습니다.
참으로 악독합니다. 그런 여러분들을 방패막이 삼아 가진 것도 없고 빽도 없고 벌이도 각박한 사람들의 정당하고 절박한 외침을 틀어막는 이 땅의 권력과 자본이 말입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더욱 후안무치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경찰은 전 의경을 방패막이로 내모는 걸로도 모자라 시위대의 감정을 먼저 자극하고 폭력상황을 유도하는 치졸한 행태를 보이더군요. 집회신고만 했다하면 몇 시간 전부터 집회장 주변을 경찰버스와 전 의경들로 빼곡히 둘러싸며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장합니다. 인도까지 점거하고 통행을 막는 경찰에게 공무집행 중이니 관등성명을 대라고 시민들이 요구해도 못들은 척 묵살하거나 심지어 ‘당신들이 무슨 시민이냐’, ‘이게 무슨 공무집행이냐’, ‘억울하면 다른 경찰 불러라’ 라는 식의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더군요. 집회를 마치고 인도를 걸어가는 시민들을 그보다 몇 배나 많은 전 의경들로 둘러싸 옴짝달싹 못하도록 불법감금을 해놓은 상태로 자진해산 경고방송을 해대며 시민들을 우롱하기도 합니다.
물론 위의 사례들은 모두 여러분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 혹은 더 높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허나 그 곳엔 여러분들도 계셨었죠. 그렇다 해도 저는 여러분들을 비난하거나 다그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뻔뻔하고 치졸한 지휘관들을 대할 때면 울컥 울화가 치밀어 올라 입에 거품 물고 목울대가 터져라 욕지거리를 해대며 발광을 해대기도 하지만 그러다가도 뜨거운 땀 때문에 허옇게 김이 서린 안경에 아직 여드름이 몽글몽글 나있는 앳된 얼굴로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여러분들을 보면 순간 화낼 기운도 안날만큼 턱하고 맥이 빠져버리기도 합니다. 종종 여러분들이 방패를 땅에 내리찍으며 목청껏 기합을 넣지만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시위대를 응시하고 있을 때는 정말 여러분들과 마주하고 있는 제 모습이 너무 민망하고 낯부끄러워 이놈의 나라 국민이라는 자격을 내놓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주저리 두서없이 떠들었네요. 딱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한 건 아니에요. 다만 저도 집회에 나가면 욱해서 방패를 밀어내기도 하고 거친 말들을 입에 담기도 하지만 집회가 끝나고 들어갈 때 밀려오는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경찰 방패에 맞아 피를 철철 흘리며 응급차에 실려 가는 학생을 보면서, 전경과 시위대들의 충돌을 보며 절로 복받쳐 터져 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고 절규하는 어떤 이을 보면서, 밀어내는 시위대를 방패로 막아내느라 땀으로 범벅이 된 한 의경의 얼굴을 보면서 말이죠. 어제도 어김없이 촛불집회가 열렸고 일부 시위대가 용산 철거민 살인 현장 방향으로 도로를 점거하며 행진을 하다 경찰과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충돌 과정에서 몇몇 전의경이 시위대 무리로 끌려와 주먹과 발길로 얻어맞더군요. 여러분들 당사자였을 수도 있고 또는 여러분들의 동료였을 수도 있겠죠. 달려가 흥분한 시위대를 뜯어말리고 얻어터지던 의경을 겨우 그 무리에서 떨어뜨려 놓고 나니 제 바지에 핏자국이 얼룩덜룩 묻어있더군요. 아마도 경황이 없어 괜찮은지 물어보지도 못했던 그 의경이 흘린 피였겠죠. 먹먹해졌었습니다. 흥분해 달려드는 시위대들 속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어쩌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 죽음의 전조를 경험하진 않았을까요.
감히 이해하려 애써봅니다. 여러분들이 군대라는 그 공간 내에서 얼마나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지. 이길준 의경의 표현처럼 ‘인간성이 하얗게 타들어가는 것’같은 절망감. 더럽게 완강하고도 견고한 군대 내의 상명하복 질서가 강요하는 인간성의 말살. 그렇지만 전 기존 질서에 저항했던 이길준 의경처럼 모두가 용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벌써 저부터가 그러하거든요. 직장 내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저항하지 못하거든요. 그 저항이 가져올 관계의 불편함과 불이익, 손해 등을 감수할만한 용기가 저에겐 없답니다. 그렇지만 말이죠. 또한 우리 모두가 비겁하지 않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기성찰이 있다면 말이죠. 저항하지 못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반성하고 성찰하려 하기보다 합리화 하고 변호하려 한다면 그게 정말 비겁이 아닐까요. 80년 광주에서 계엄군으로 동원되었던 한 군인이 당시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고, 또 합리화 하고, 또다시 합리화하다보니 어느 순간 전두환의 최측근 경호실장이 되어 있더라는 한 만화의 설정은 자기합리화를 위한 가면을 오래 쓰다 보니 가면의 얼굴이 자기얼굴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슬픈 우리의 자화상을 그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우린 또다시 거리에서 마주하게 되겠지요. 국제법이니 인권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 안드로메다 행성에서나 통하는 가치인 줄 아는 개념 없는 권력과 자본을 갈아엎지 않는 한 우리는 또 만나게 될 수밖에 없겠죠. 슬프긴 하지만 역설적으로 여러분들의 선하고 맑은 눈을 보았기에 전 다시 여러분들과 마주하려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더러운 돈과 권력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알고 미안함을 느낄 줄 아는 평범하고도 선량한 사람들의 맑은 기운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동원된 집회가 곧 세상을 배우는 학교일 수 있습니다. 경찰 내부에서 이뤄지는 왜곡된 교육을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지휘관들이 부추기는 시위대에 대한 적개심을 조금만 내려놓을 수 있다면 힘든 군복무 기간이 세상을 더욱 너그럽고 균형 있게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곧 봄이 오겠죠. 평화롭고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는 따뜻한 봄날이 올 때까지 언제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2009년 따뜻한 봄을 앞둔 어느 날
활동가의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