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첫날, 다시 대한문을 찾았다. 장마가 지나간 자리, 따가운 햇살 때문에 그늘을 찾을법도 한데, 쌍용해고노동자들은 가림막 하나 없는 임시분향소를 지키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먼저 죽어간 동료를 추모하는 일이 이토록 힘겨운 싸움이 될 거란 것을 알고 농성을 시작했을까?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죽지 않기 위해,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이곳 대한문에는 쌍용해고노동자들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모이는 것 자체를 불온시
그러나 경찰과 중구청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불온시 했다. 2013년 3월 3일 대한문 앞 농성장 화재 이후 서울 중구청은 계고장을 보내 농성촌을 철거하겠다고 협박했고 4월 4일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서울 중구청은 사라진 농성장 자리에 화단을 설치했고 그때부터 경찰은 대한문 앞 농성장에 본격 상주하면서 온갖 인권 침해를 자행했다. 6월 10일 서울 중구청은 또다시 계고장 하나 없이 대한문 쌍용차 임시분향소를 기습 철거했다. 이날 경찰은 항의기자회견 조차 막았고 경찰행동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연행하는 등 물리적인 폭력을 앞세워 저항의 의지를 꺾으려했다. 그러나 다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임시분향소를 만들었고 지금껏 분향소를 지켜내고 있다.
대한문 앞, 경찰에 의해 집단적 괴롬힘과 모욕 일상화
지난 4개월 간 경찰은 대한문 앞을 치외법권 지역으로 만들어놓고 집회도, 노숙도, 침묵시위도, 연좌농성도, 그 어떤 것도 금지시켰다. 심지어 경찰은 사람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틈타 거리에서 잠자고 있는 노동자를 깨워 잠을 잘 수 없도록 한다든지, 대한문 앞을 경찰병력으로 포위하여 마치 유치장에 있는 것처럼 노동자들을 감시한다든지 등 이런 괴롭힘을 매일 반복해왔다. 3류 조폭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치사한, 도를 넘은 경찰폭력이 지금 서울 한복판에서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다. 삶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 거리로 나섰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연대하러 온 모든 이들은 또 한 번 공권력에 의해 사람으로서 존엄함 훼손을 견디어 내고 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겠다싶어 각계 사람들이 화단 앞에서 연좌농성을 약 한달 간 진행했고 인권활동가들 역시 경찰의 대응을 체계적으로 감시해 그 결과를 7월 18일 인권보고대회로 갈무리 했다.(보고서는 인권운동사랑방 홈페이지 자료실에 있어요)
대한문은 추모의 집
대한문 인권보고대회에서 대한문관련 영상이 상영되었는데, 향로를 경찰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던 쌍용해고노동자 고동민 씨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는 말한다. ‘이곳 대한문에 임시분향소를 설치하고 난 후 더 이상 쌍용해고노동자들 중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없었다. 미신이라고 손가락질 해도 상관없다. 이것이 내가 대한문을 지키는 이유이다. 대한문은 나에게 추모의 집이다.’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 너무 당연한 인간의 본성 아닐까?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만들어놓은 대한문 농성장은 저항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이 시대 삶의 공간으로부터 밀려난 밀양주민들, 강정주민들까지 합세해 “함께 살자 농성촌”을 이루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 전국 농성장들은 마치 치워져야 하는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 민초들이 함께 만나고 모여서 저항하고 연대해야할 거리는 온통 경찰에 의해 점거되었다. 광화문, 종로, 시청 등 서울의 주요 도로에는 차벽으로 인해 교통의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고 있다. 또한 광장과 인도에는 경찰병력으로 인해 시민들의 통행의 불편을 겪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 4개월 동안 서울 한복판 저항과 연대의 상징인 대한문 분향소는 저항과 연대의 공간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이를 빼앗으려는 경찰, 중구청과 싸움 계속 되었다. 삶의 공간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 싸움은 이어질 것이다. 8월 24일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촉구하고 해고자 복직을 위해 ‘범국민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5천원을 내면 조직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조금씩 시간과 마음을 내어 대한문분향소 시민상주단으로 참여하면서 거리에서 이 여름을 견디어보는 것도 좋은 피서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