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내창이 사망 직전에 마지막으로 동행한 사람은 백승희와 안기부요원인 도연주였다"라는 한겨레신문 기사가 과연 허위인지의 여부.
나. 위 기사내용이 허위라 하더라도 피고인에게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형법 제309조)의 구성요건인 '허위에 대한 인식' 및 '도연주를 비방할 목적'이 있었는지의 여부.
다. '허위에 대한 인식'과 '도연주를 비방할 목적'이 없는 경우에는 피고인을 단순 명예훼손죄(형법 제307조)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데, 이때에도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한 형법 제310조가 적용되는지 여부.
◇ 이내창이 사망 직전에 남녀 1명씩과 동행중인 것을 보았다는 덕성호 선장 이현우와 삼호다방 종업원 최희는 처음에 위 동행한 남녀가 백승희와 도연주인 것처럼 말하였다가 나중에 이를 번복한 반면, 도연주와 백승희는 이내창이 서도로 건너가 변사할 때까지의 시간 무렵에 마중 나온 서동수 박재우와 함께 거문리에 있는 영국군 묘소를 둘러보고 근처 해변에서 사진까지 찍었다는 것인 바, 그때 찍었다는 사진 1매와 서동수 박재우 박충윤 이난희 등 위 도연주 백승희와 그 날 이후 이틀간 어울린 사람들의 진술을 종합할 때 이내창이 변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대의 위 도연주 백승희의 알리바이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결국 위 기사내용은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고, 나아가 안기부 인천분실의 타자수에 불과한 도연주를 수사나 정보와 관련하여 고도로 훈련된 안기부직원인 것처럼 인식될 소지가 있는 '안기부 요원'이라고 보도한 것은 안기부가 이내창의 사망에 직접, 간접으로 개입한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는 표현으로서 사실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다.
◇ 위 기사가 보도될 당시에는 뒤의 제4항에서 보는 바와 같이 객관적으로 이내창의 사망에 도연주 등이 관여된 듯한 강한 의혹을 갖기에 충분한 여러 사정이 있었다고 인정되는 데다가 한겨레신문이 사회에 영향력 있고 책임 있는 유력 일간지였던 점을 감안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기사를 작성할 당시에 그 기사내용을 허위라고 인식하면서도 감히 이를 위 신문에 보도한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고, 위 기사내용이 임수경의 방북을 계기로 정부수사기관과 학생운동권간의 긴장이 국민적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던 시점에서 학생운동권의 간부 중 한 사람이었던 이내창이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된 것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던 의혹을 다룬 것인 이상 위 기사를 보도한 주요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고 봄이 상당하여 이를 도연주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것이라고는 볼 수 없으므로 결국 피고인의 행위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의율할 수는 없다.
◇ 위 기사내용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더라도 피고인이 이를 진실한 것으로 오신한 경우에는 형법 제15조에 의하여 피고인을 형법 제307조 제2항으로는 처벌할 수 없고 같은 조 제1항으로만 처벌할 수 있는 것인데, 이 경우에 있어서도 인격권으로서의 개인의 명예보호와 정당한 표현의 자유와의 조화를 고려할 때 그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라면 행위자가 그 사실을 진실한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위법성 조각사유에 관한 형법 제310조가 적용된다고 보는 것이 대법원 판례(대법원 1993.6.22.선고, 92도3160 판결 등 다수)이고 학설의 주류이다.
◇ 이 사건의 경우, 그 무렵은 임수경의 방북을 계기로 전대협 간부들에 대한 안기부의 전면 수사가 진행되던 시점이었던 점, 이내창은 전대협 소속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으로서 변사 직전인 89년 8월14일 오후에 총장면담이 예정되어 있었고, 8월15일에는 각종 행사를 주도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무 연락이나 편지도 남기지 않은 채 8월14일 오후에 안성의 자취집에서 돌연 사라진 뒤 그 다음날 아무 연고도 없는 거문도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점, 이내창이 변사 직전에 남녀 1명씩과 동행하였다는 제보에 따라 그 남녀의 신원을 파악하던 중 여수발 거문도행 신영훼리호의 승선자 명부에 학생 신분으로 기재된 도연주, 백승희의 이름이 이내창의 이름에 연이어 기재되어 있어 위 양인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되었던 점, 그후 도연주와 백승희가 나타나 그들의 신분을 확인한 결과 그중 도연주는 안기부 직원인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내창의 사망 직전 목격자인 이현우와 최희는 처음에는 위 백승희와 도연주가 이내창과 동행했던 바로 그 남녀였던 것처럼 진술하였으나 그후 이를 번복함으로써 그 진술번복 경위에 의혹이 제기되고 있었던 점, 위 도연주와 백승희는 원래 8월15일 07:00에 여수를 출발하는 쾌속정인 타코마호 표를 예매하고서도 웬일인지 한시간 후에 출발하는 신영훼리호로 배편을 바꿈으로써 이내창과같은 배를 타고 거문도에 가게 된 것으로 밝혀진 점, 이내창의 사인에 관하여 익사인 것으로 발표되기는 하였지만 부검에 관여한 중앙대 장임원교수는 타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던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이 이 사건 기사를 보도할 당시 백승희와 도연주를 이내창의 변사직전에 동행한 남녀라고 믿은 데에는 객관적으로 그럴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하겠으므로 피고인의 행위는 형법 제31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서울형사지방법원 9단독 김희태 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