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공대위, 제네바 회의참석 결과보고
인권연락기구 사무국 카나다 Internet에 두기로
한국인권단체공대위(KONUCH)의 이대훈 씨가 지난 2.17일부터 28일까지 제네바에서 열리는 유엔인권위원회에 참석하고 3월 3일 귀국하였다. 공대위에서는 인권단체들간의 세계연락기구 회의(NLC회의)와 이번 50차 인권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이씨를 파견하였고, 그에 따른 1차 보고모임을 지난 8일 가졌다. 공대위는 자세한 내용을 두 차례의 보도자료로 준비하고 있다.
비엔나인권대회의 성과중의 하나인 이번 NLC회의는 2월 21일에서 23일까지 3일간 제네바 유엔본부 신관 23호 회의실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회의에는 세계 각 지역과 부문(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구미, 원주민, 여성, 난민, 장애우 등)에서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총 29명이 참석하였다.
비엔나대회 이후 처음 개최된 이번 연락기구회의에서는, 인권운동의 정보공유와 신속한 연락을 위한 공동의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과 국제무대에 남측(비선진국)의 인권문제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다시 한번 합의하였다. NLC회의는 전원의 동의로 과도적인 인권연락기구(NILC)를 구성하기로 합의하고 그 사무국을 우선 카나다의 국제인권단체인 Internet에 두기로 함과 동시에 앞으로 1년동안 지역과 부문의 내적 연락 및 협의체계를 공고히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로서 인권운동단체들은 역사상 처음 남측의 주도로 초보적인 세계연락체제를 구성한 셈이며, 앞으로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선진국 정부들의 인권외교와 다른 분명한 입장을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법률가협회 올해 국가보안법 조사단 파견키로
3월 8일에 있었던 공대위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 50차 인권위원회에서는 한국과 관계된 내용으로 이미 알려진 3개 국제단체의 국가보안법 거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와 별도로, 특별보고자(각 인권주제에 대한 전문가)의 보고내용과 미국정부대표의 발언 중에 ‘사상과 의사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내용이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고 한다. 공대위는 비엔나대회 이후 다른 국가보안법사건들과 함께 그 활동이 꽤 알려진 덕분에 홍보 및 여론활동을 전개하는데 매우 유리했으며, 다시 한번 다른 국제인권단체들로부터 공대위에 대한 기대와 호감을 확인했다고 한다. 아울러, 공대위와 연대관계를 갖고 있으며 국제사면위와 버금가는 권위를 갖고 있는 국제법률가협회(ICJ)에서는 올해 국가보안법에 따른 인권침해를 조사하기 위하여 조사단을 한국에 보낼 계획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편 유럽기자들은 UN의 중요 회의인 인권위원회에 한국 언론사에서 단 한 명의 기자도 참석하지 않은 점이 매우 의아스럽다는 반응이었다. 미국의 케네디인권센타와 국제사면위 등은 「인권하루소식」에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하였다.
◇한국 국가보안법 인권위에서 4번째 거론돼
3월 2일 중남미정의평화봉사회, 민선정부에 잔존하는 옛 법제와 권력기구의 예로 국보법 거론
3월 2일 유엔인권위에서는, 케네디인권센타, 국제고문방지연합과 국제기독학생연맹(발언문 <인권하루소식> 2월 24일자 참조)에 이어 4번째로 국제인권단체인 중남미정의평화봉사회(SERPAJ)가 한국의 국가보안법에 대해서 거론하여 관심을 모았다. 의제 12(나라별 인권상황)에서 발표된 이 발언은, 많은 나라에서 권위주의적 정부가 민선정부로 바뀌고 있지만 옛 법제와 권력기구가 잔존하고 과거 인권침해에 대한 묵인의 관행(impunity) 때문에 여전히 심각한 인권침해가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한국과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그 사례의 하나로 언급되었다. SERPAJ는 중남미 10여국에 지부를 갖고 있는 종합적인 인권운동단체이며, 우루과이의 지부장 리카르도 챵갈라 박사가 발언하였다.
◇미국대표 ‘표현의 자유’ 강조, 시기나 취지상 미 국무성의 국보법 폐지발언과 연관
한국 국보법에 관해 케네디인권센터 등 3개 단체가 발언했던 ‘고문, 자의적 구금, 표현의 자유, 부당한 재판’등을 다루는 의제 10 토의에서 미국대표가 의사표현의 자유를 강하게 강조했던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미국정부의 민간인대표(public member)인 허만 슈와츠 교수는 “다양한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 없이는 어떤 민주주의도 지탱할 수 없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민주주의의 꽃이다‧‧‧ 다수가 아니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견해를 드러낼 기회를 꼭 가져야 한다. 그들은 새로운 다수를 형성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라고 강조하였다.
미국정부의 이 발언이 있은 후 많은 인권단체들이 발언문 사본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물론 미국대표의 거의 대부분의 인권에 관한 발언은 정치적 목표(이 경우에는 주로 중국을 겨냥)을 갖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무성의 국가보안법 폐지발언과 시기와 그 내용상‧취지가 연관성이 있으며, 또 한국정부의 국가보안법 옹호주장과 불일치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해석된다.
◇국제무대에서 부끄러운 남북한 인권공방
남한, “고문, 세뇌 등 인권침해 은폐” 비난
북한, “장기수, 국가보안법 문제” 비난
나라별 인권상황을 다루는 의제 12번의 토의과정에서, 지난 3월 7일 남한정부가 먼저 북한인권을 거론하며 공세를 취하고, 바로 다음날 북한이 민감하게 반박하는 등 남북갈등을 국제무대에서 연출되었다.
남한정부대표는 5장 분량의 긴 내용의 발언을 하였는데, 전체내용의 80%는 일반적인 외교수사로서 일관했으나 뒷부분에 가서 앞부분의 내용이나 어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하였다.
남한정부대표는 북한이 “자결권”을 이유로 고문, 강제실종, 즉결처형, 세뇌 등 인권침해를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동시에(단 근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유엔인권위에서도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또 스스로 ‘인권천국’이라고 주장하는 북한을 비난하였으며, 그 폐쇄성에 대해서도 강한 비판을 제기하면서, 그 때문에 북한내 인권상황을 다른 어떤 나라도 알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에 대해서 다음날 북한정부대표는 유엔헌장에 나타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위한 국제적 협력의 정신을 강조하면서 발언(5장 조금 넘는 분량)을 시작하였다.
이어 이번 인권위에서, 특히 의제 12번을 다루면서 일부 국가들에 대한 공세적 발언이 가져오는 부정적 작용을 지적하였다. 그 논거로 한 나라가 다른 나라 인권에 대해서 “재판관”과 “교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 “비논리적”일 뿐만 아니라 “전략적”이라는 점이었다. 이후 발언의 상당부분은 인권회의에서 보여진 서방의 정치적 게임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서방 국가들이 서로 상대국의 인권문제를 전혀 거론하지 않는다는 발언은 관심을 모았다. 서방국가의 인권문제로 실업, 외국인노동자 등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인종차별과 범죄 그리고 외국인 배타주의의 확산 등을 예시하면서 빈부간 인권의 이중기준을 지적하였다.
북한정부 역시 후반부에 가서는 현 남한정부가 군사정권과 다름없다면서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한 미국 정부의 말을 인용하여 남한의 인권상황을 비난하였다.
곧이어, 남북한은 각각 예정된 발언 후에 주어지는 반박권을 행사하였는데, 남한대표는 북한의 국보법 거론에 대해서 국보법이 필요 없는 국가안보상황을 바란다고 하면서 북한의 형사법과 재판관행에 대해서 비난하였고, 북한대표는 80년부터의 민주항쟁, 고문, 쿠데타를 열거하면서 현재 남한정부가 이름만 문민정부이지 군사독재와 같다고 비난하였다.
한편 남한대표는 북한에 대하여 “DPRK(북조선인민공화국의 영어약칭)”와 “북한”이란 호칭을 함께 사용하였으며, 다음날 북한대표도 남한(정부)을 가르쳐 시종일관 “남한(정권regime)”이라고 표현하였다(외교 관례상 다른 나라의 정확한 국명을 호칭하지 않는 것은 노골적인 결례이다).
남북한 외교무대에서 상호 비난
남북합의서와 특사교환회담 무색
이번 남북한 인권공방의 특징은, 국제무대에서의 남북한간의 상호비방이 재발했다는 점주)과 상호간 인권문제 거론으로 이른바 ‘상호비방과 내정간섭 금지’의 구분이 사실상 애매하다는 점(국제인권법의 원리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거론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확산하는 것으로서 내정간섭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남한이 먼저 논란을 시작하여 시기상 현재 진행중인 남북한 특사교환 실무접촉과 절묘하게 일치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인권위원회가 열리는 제네바 현지의 해외 인권단체들의 평에 따르면, 남북한 정부는 같은 민족의 불편한 인권문제를 서로 장시간 비난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남한은 먼저 공세를 취했다는 점에서, 북한은 강대국의 정치적 인권외교(미국의 국가보안법 거론)를 그대로 재인용했다는 점에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이 있었다.
보통 이 정도의 발언은 현지 대표부의 자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번 남북인권논쟁은, 인권을 핑계로 한 정치권력간의 전형적인 공방 사례로서 최근 미국이 한국의 국가보안법을 거론하며 남북관계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과 같은 방법으로 평가된다. 작년 비엔나 세계인권대회에서도 인권을 정치에 이용하는 관행은 거세게 비난받았던 바, 실제 인권상황의 개선보다는 이같은 ‘반사적 합리화’와 정치적 인권외교의 풍조가 확산되는데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주: 92년 체결된 남북합의서 1장 3조는 남북한이 서로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하고 상호비방과 중상을 중지하자는 내용이며, 1장 6조는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여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