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①100만이 넘는 국민이 제출한 고발장이 천천히 비춰진다.
․고발인- 성명 : 오 민주
․피고발인- 전두환(다이 보안사령관), 노태우(당시 수경사령관), 정호영(당시 특전사령관) 외 32인
․죄명- 내란, 내란 목적 살인 등
․적용법조- 형법 제87조, 제88조 등
․고발사실- 상기 피고발인들은 80년 5월 17일부터 27일까지 정권을 찬탈할 목적으로 광주시민 고선회 외 다수를 학살하였습니다. 이에 고발인은 광주에 투입되어 학살을 자행한 최고 책임자에서부터 대대장급까지를 고발하는 바이므로, 검찰은 이러한 고발인 및 우리 국민의 절실한 요청 등을 충분히 참작함과 동시에 이 고발에 대한 수사가 역사상의 중대한 책무이자 국민전체에 대한 의무임을 깨달아 공소시효가 1년 남짓밖에 남지 않은 이 사건을 즉시 수사에 착수해 총력을 다해 그 진상을 밝히고 형사상 소추를 할 것을 바라는 바입니다.
장면② 9시 뉴스시간, 광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제 도입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문이 발표된다. 서울역과 시내 곳곳의 시민들이 텔레비젼을 통해 지켜보며 환호성을 지른다.
장면③ 어느 고등학교 국사시간
․선생님 : 교과서 200쪽을 펴세요. 오늘 배울 것은 5․18광주민중항쟁입니다. 다들 예습해 왔을 테니 질문을 받겠습니다.
․학생1 : 선생님, 광주 항쟁이 1980년에 일어났는데 그 책임자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를 1년 남기 94년, 그러니까 14년 만에야 이루어진 까닭이 무엇이었지요? 그런 엄청난 일들을 저질렀는데 왜 14년씩이나 내버려둔 거예요?
․선생님 :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5․18민중항쟁의 책임당사자가 2번씩이나 대통령을 해먹었어요. 그러니 그런 정부에 대해서 진상규명이나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수도 없었고, 그런 정부의 본질과 맞서 싸우면 민주정부를 세우는 것 자체가 큰 일이었죠. 그러나 93년 소위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정부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었어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해 "진상규명과 관련한 미흡한 부분은 훗날 역사에 맡겨야 하고 오늘 또다시 한풀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죠. 이에 분개한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국민고발운동을 전개하고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라 비뚤어진 우리 역사를 바로잡자는 각오로 나섰기 때문에 늦게나마 진상규명이 이뤄지고 책임자처벌과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학생2 : 반민특위에서부터 배배꼬인 우리 역사를 바로잡은 정말 큰 사건인 것 같아요. 선생님! 이거 대학입학 논술시험에 나올 수 있는 가장 큰 문제겠지요?
이상은 가상시나리오다. 그러나 가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가상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기 위한 「광주항쟁계승위원회」는 작년 5월 김영삼의 '역사에 맡기자'식의 회피발언이후 결성논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6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이 명동성당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났고, 그 참여자는 광주에서 상경한 사람들이었다. 이에 전국연합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찾아가 약속을 하였다. "5․18민중항쟁을 더 이상 광주만의 문제로 놔두지 않겠습니다. 전국민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사업을 벌일 것을 약속 드립니다"고.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키고자 각 단체간의 실무급 모임이 이루어졌고, 어느 단체도 참여하는데 있어 단서를 달지 않았다.
묵은 빚을 갚는 심정으로 누구나 참여하였고, 수입개방저지투쟁으로 인해 결성이 미뤄지다가 94년 3월 25일 결성식을 갖게 되었다. 결성인사는 3백50명인데 원래 3백49명이었다가 12․12 쿠데타의 피해자로써 당시 중령이었던 김광해 씨가 참여함으로써 3백50명이 되었다. 김광해 씨는 12․12 쿠데타 당사자를 고소한 피해자 모임의 총무간사를 맡고 있다고 한다.
「광주항쟁 계승위원회」의 조직은 고문(강석주 스님 외), 공동대표(강신석 목사 외), 국민위원(강대성 변호사 외), 집행위원회(집행위원장 황인성)로 이루어져 있고, 주요 사업은 세개의 소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법률대책소위(박인제 변호사 외)가 '국민고발운동'을 전개하면서 소송을 담당하고 있다. 지난 13일 1차로 294명이 고발장을 접수시켰고, 현재까지 1만여명의 고발장이 모여있다. 25일에 2차로 서울지검에 고발장을 접수시킬 것이다. 한편 광주에서는 20일 '광주전남 연합 고발운동본부 발대식'을 갖고 6천명의 고발장을 접수할 것이다. '국민고발운동'은 1백만명 고발운동을 목표로 전개되고 있다.
둘째, 진상조사소위(김영진 의원 외)는 진상보고서를 내년 5월까지 제출할 예정으로 준비중이다.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는 많았지만 만족할만한 자료로서 모으고 정리하는 사업이 필요하고, 증인센타설치, 미국 측에 자료를 요청하여 받아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셋째, 항쟁정신계승소위(안병욱 교수 외)는 5․18민중항쟁을 3․1운동, 4․19혁명과 같이 온 국민이 계승해야 할 우리의 역사로 자리잡게 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이 달 14일에 '90년대 한국사회와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가진 바 있으며, 앞으로도 정기적인 학술대회개최와 기념일제정, 교과서 수록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광주항쟁 계승위원회」가 걸어갈 길은 급하다. 소위, 공소시효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나치전범에 대한 처벌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듯이 '불처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할 것이다. 또 하나, 수많았던 '공대위'처럼 모두가 책임지고 누구도 책임이 없는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주인이 되어 사업을 계속할 것을 5월의 하늘 아래서 서로 서로의 눈을 맞추고 논을 잡으며 다짐해 본다.
<「인권운동사랑방」 류은숙>
인권하루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