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인권유린을 예사로 아는 나라에 태어나시어 늘 고생이 많으리라 생각 듭니다. 저는 H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오늘 아침에 보내 주신 설문지를 읽다가 속이 답답하고 울적하여 편지 드립니다. 인권 10대 뉴스를 뽑아 보려고 앞에서 읽어 나갔습니다. 동그라미 치고 또 동그라미를 치고, 그러다 보니 47개 모두 동그라미를 치게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10개만 뽑을 수 없었지요. 저로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가슴 아파도 큰 것 10개만 선정해야겠지요. 뽑히지 않은 37개 하나 하나에도 모두 피눈물이 담겨 있을 텐데… ‘10대 뉴스’에 묻혀 조명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 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젊은이와 더불어 사니까요. 그러면서 한 편으로 두렵습니다. 이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가, 무슨 일로 떳떳할 수 있는가 싶습니다.
저는 인권옹호자, 인권침해자만 대답할랍니다.
○인권옹호자: 김영삼(자칭)
○인권침해자: 김영삼
게가 게딱지 속에 숨듯, 소시민인 저는 용기가 없어 숨죽여 삽니다. 그래도 인권운동의 맨 앞에 서신 ‘사랑방 가족’ 때문에 그나마 숨쉽니다. 늘 건강하셔야 합니다. 좋은 세상 올 날을 기대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녕히 계십시오.
1996. 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