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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간첩 잡는데 무슨 인권?"

광기와 이성의 대결, 안기부법 국회 공청회


"간첩 잡다보면 '실수'할 수도 있는 걸 가지고 왜 그래?" 빨갱이 잡던 검사 출신의 노변호사가 고성을 지르면서 탁자를 내려쳤다. 자유총연맹 회원 등 객석의 지지세력들은 "옳소"라고 환호하며 술렁대기 시작했다. 당장 빨갱이 잡는 전선으로 뛰쳐나갈 듯한 기세로….

12일 국회의원 6인협의회(신한국당 김도언 의원 등)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안전기획부법 관련 대공수사권에 관한 공청회」는 이러한 광기와 이성 간의 치열한 대결장이었다.

오제도(검사 출신 변호사), 박 홍(전 서강대 총장), 양동안(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이 인물들이 신한국당이 내세운 안기부법 찬성론자들이었다. 면면에서 예상되듯 이들은 안기부 수사권 확대에 대한 합리적 논거를 제시하기 보다는, 백색선동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국가안보를 위한 안기부 업무수행과정에서 인권침해가 발생했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일일 뿐이다" "공산당 잡는게 얼마나 힘이 드는데, 직권남용죄라니? 수사관들의 발목을 묶어 버리면 간첩은 어떻게 잡으란 말인가". 오 변호사의 흥분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관공서, 종교계 등 곳곳에 간첩이 박혀있는데, 반공진영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가?" 박 홍 교수도 예의 '좌경세력 박멸론'을 되풀이하며, "불온사상을 조장하는 자유를 보장해서는 안된다"고 목청을 높였다.

양동안 교수는 "찬양·고무 행위야말로 간첩을 포착하는 유력한 징후"라며, 이에 대한 수사권을 확보해야 일관되고 효율적으로 간첩을 잡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나마 찬성론자들 가운데 나온 유일한 논리적 설명이다. 그러나, 양 교수 역시 "찬양·고무 행위가 단서가 되었던 간첩사건의 예를 들어보라"는 객석의 질문에는 침묵을 지켰다.


간첩수사 금지하자는 것 아니다

성난 황소마냥 흥분해 있는 선동가들 반대편에서는 안기부법 반대론자들이 차분히 의견을 진술해 나갔다. 진술인으로 나온 사람은 박연철(대한변협 인권위원) 변호사, 곽노현(방송대 법학과) 교수, 이재훈 변호사(자민련 추천) 등이다.

"안기부법을 반대하는 것은 간첩수사를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인권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안기부의 인권유린과 정치개입을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 장치가 없다" "안기부는 범죄수집정보에 전념하고 수사는 검경이 맞는 것이 인권침해를 방지하는 길이다".

반대론자들은 다양한 통계를 제시해 가며,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91년부터 96년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검경의 수사가 안기부보다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 없다"(곽노현 교수) "93년 이후 3백97명의 수사관이 직권남용 혐의로 고소·고발되었지만 처벌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천정배 의원)

반대론자들은 다음과 같이 입장을 정리해 나갔다. "찬양·고무, 불고지죄에 대한 수사권은 결국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국민을 잡자는 목표가 있을 뿐이며, 그렇게 될 것이다." "과거 안기부의 잘못에 대한 청산과 민주개혁만이 안기부의 미래를 밝게 해 줄 수 있다"

지난해 여름, 안기부법의 개정이 공론화된 이후, 개정 찬성론자들이 공개석상에서 의견을 개진한 것은 이날이 최초였다. 많은 국민들이 합리적 찬반토론을 기대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게 나타났다. 흥분한 우익의 데마고기가 비판적 이성의 목소리를 압도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