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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특집> 육지 위의 노예선 ‘양지마을’ ②

단속·심사, 기준도 없다


‘양지마을’의 인권유린 행위는 입소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집없이 거리를 헤매는 부랑인들을 수용해 건전한 사회인으로의 복귀를 도모한다’는 시설의 취지와는 달리, 단속반 또는 경찰의 눈에 거슬리는 사람들은 ‘부랑인이든 아니든’ 무차별적으로 잡혀갔다는 것이 여러 사람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다.

특히 시설을 지도․감독해야 할 관할 관청의 책임방기는 이같은 인권유린을 오히려 조장하는 결과를 빚어왔으며, 나아가 시설과 관청이 서로 유착되어 있다는 의혹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93년 입소한 이상흔(57) 씨의 진술.

“천안의 한 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시켜 먹다가 화장실에 다녀와 보니 가방에 있던 돈 9만원이 없어졌다. 파출소에 신고했지만, 세 번을 신고할 때까지 오지 않았다. 그래서 파출소로 쫓아가 항의하니까 나를 뒷문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가죽수갑을 채운 채 얼굴에 가스를 뿌렸다. 이틀 뒤, 파출소장의 사과를 받기 위해 다시 파출소를 찾아갔는데, 잠시후 세 사람이 나타나 차에 태워 싣고 갔다.”


같은해 3월 입소한 김재성(58) 씨.

“후배를 만나러 천안에 내려갔다. 서울로 올라오는 표를 미리 끊고 내려갔는데, 집(경기도 이천)에 들리기 위해 표를 환불하러 창구에 갔다. 환불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직원과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때 경찰관이 나타나 ‘잠깐 이야기하자’며 역전 파출소로 데려갔다. 신원조회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세 사람이 나타나 차에 싣고 데려갔다.” 이 씨와 김 씨는 모두 “끌려갈 당시 술은 입에도 대지 않은 상태”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닥치는 대로 ‘단속’이 이뤄졌다는 주장은 직접 ‘단속’을 다녔던 김영화(58․원생) 씨의 진술과도 일치된다. 김 씨는 “단속 과정에서 신원확인절차는 없었다”며, “일단 원장 지시로 단속을 나가면 ‘저거 실어’라는 말에 따라 실어 갔다”고 밝혔다.

나아가, 단속된 사람이 설령 ‘순수한’ 의미의 ‘부랑인’이라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상담과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보건복지부가 정한 ‘생활보호사업지침’에 따르면, 관할 관청은 일단 시설에 들어온 부랑인에 대해 상담을 실시해야 하며, 종교인, 사회복지전문가, 의사, 교육자 및 관계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연고자, 사회복귀 가능성 등을 검토해 입소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시설의 장에 대해서도 월 1회 이상 원생과 상담을 실시하도록 함으로써 ‘억울한’ 입소자가 발생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양지마을과 연기군청측은 이러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뿐더러, 거기엔 고의적으로 ‘의무’를 저버린 혐의도 짙어 보인다.

20일 연기군청 사회복지과의 담당 공무원은 “입소한 모두에게 상담을 실시했다”고 밝혔지만, 원생들 가운데 일부는 “군청 직원과 말 한 마디 나눠보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심지어 “원장과도 면담 한 번 해보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원생도 있다.

또한 상담을 실시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입소 여부를 결정하는 데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원생들에 따르면, 군청 직원이나 원장과의 상담 내용은 ‘주소와 가족관계’ 등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또, 상담 과정에서 “형제와 보호자가 있으니 연락을 취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에도 “알겠다”는 답변만 돌아올 뿐,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기군청측은 “입소 여부를 결정하는 기준이 뭐냐”는 질문에, 뚜렷한 답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입소한 윤석만(36) 씨는 “상담을 한다면서 시종 윽박만 지르는 등, 군청 직원은 양지마을을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