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여성 살해한 미군 처벌 어려워
아직도 우리의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는 윤금이 씨 살인사건의 앙금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 다시 미군에 의한 한국여성 살인범죄가 발생했다.
지난달 28일 군산시 아메리카 타운 내에서 환전소를 운영하던 박순여(66세) 씨가 등과 왼쪽 팔, 목, 가슴, 배 등을 단도로 10여 차례 찔린 채 숨져있는 것을 주민 박 아무개 씨가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주민의 신고를 받은 뒤 손에 피를 묻힌 채 도주하던 용의자 할버슨 에릭(21세. 제8지원중대) 병장을 검거했다.
검거된 에릭 병장은 살인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지만 경찰은 그의 왼쪽 팔과 오른쪽 허벅지에 손톱으로 할퀸 자국이 있는 점, 오른쪽 중지마디가 찢어져 있는 점, 옷이 찢어져 있는 점, 용의자의 집과 반대방향으로 뛰어갔던 점 등을 들어 에릭 병장을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에릭 병장은 재판과정이 종결될 때까지 미군범죄자의 신병을 확보할 수 없다는 한미행정협정(SOFA)에 의해 미 헌병대에 인계된 상태다.
경찰은 시신부검과 용의자의 옷의 감정의뢰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에릭 병장을 살인죄로 고소할 방침이나 한미행정협정으로 인해 적극적인 수사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관할 경찰서의 사건 담당경찰관은 “용의자가 미군이어서 확실한 검사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실질적으로 모든 일이 중단된 상태”라며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1945년 9월8일 미군이 주둔한 이래 보고된 미군범죄는 총 10만건이 넘지만 지난 97년 10월까지 한국법정에서 처벌받은 사건은 1-2%에 불과하다. 이중 지난 67년부터 87년까지 20년간 신고된 여성강간사건은 84건이며 67년 이전 사건까지 합친다면 무려 백명이 넘는 한국여성들이 미군에 의해 강간당했다. 그리고 이들 중 34명이 미군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80년부터 97년10월까지 기준) 그러나 이것이 경찰통계임을 감안할 때 신고를 꺼리는 기지촌 주민들이나 매춘여성들의 피해규모는 훨씬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상임대표 전우섭 목사)는 “미군범죄가 끊이지 않는 것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서 비롯된다”며 “우선적으로 한미행정협정(SOFA)의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행정협정 22조에는 △미군군속과 가족은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할 수 없다 △미국 요청시 한국은 전속관할권을 포기한다 △형이 확정되어도 본국송환이 가능하다 △주한미군은 재판거부권이 있다고 되어 있어 한국의 행정권을 유명무실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