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에 맞선 인권수호자들’
이번에 소개되는 4편의 작품에 면면히 흐르는 정신은 ‘폭압적 횡포에 맞선 인권의 수호자들’로 집약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이 시대의 민초들로서 자신이 결코 나약하고 힘없는 희생자가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 맥도날드에 맞서 싸우는 용감한 시민들에 대한 기록, <맥도날드 망신당하다>는 지금 ‘표현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새로운 싸움에 돌입했다. 맥도널드의 광고에 수입을 의존하는 상업 채널 뿐 아니라 BBC와 채널4마저도 상영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터넷, 세계 각지의 독립적인 영화제들, 그리고 비디오를 통해 이 작품을 만나는 관객들은 모두 기립박수를 보낸다. 주최측은 이번 인권영화제에서도 <맥도날드 망신당하다>가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얻는 작품이 될거라 기대하고 있다.
199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뉴 시네마 포럼 초청작인 <전투지대>는 길거리에서 공공연하게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다루고 있다. 감독 매기 해들리-웨스트는 이 작품을 위해 남성들의 폭력에 스스로 자신을 내던져 그 용기를 높게 평가받기도 했다.
<버마일기>는 투쟁의 전장을 떠나는 사람과 여전히 지키는 사람들이 교차하는 버마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고서 이며, <게리와 루이스>는 남아공 ‘진실과 화해위원회’의 현재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 맥도날드 망신당하다
영국/ 1997년/ 제작감독 페니 암스트롱/ 드라마 감독 켄 로치/ 55분/ 다큐멘터리/ 컬러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 맥도날드에 맞서 싸운 이름없는 두 시민, 셀렌 그틸과 데이비드 모리스는 자신들의 소박한 싸움이 이토록 전세계의 주목을 받게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12년 전, 그린피스의 멤버로서 ‘맥도널드, 무엇이 잘못됐나?’라는 짤막한 유인물을 돌리던 두 사람은 맥도널드의 집요한 방해공작에 직면하고, 명예훼손을 이유로 송사에까지 휘말리게 된다. 이로써 세계 최대의 다국적 기업을 상대로 한 길고도 험난한 투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6년간의 재판 과정에서 허위광고, 노동자 착취, 동물 학대, 영양문제, 환경오염 등 맥도날드 사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게 되고 거만한 맥도날드사의 간부들은 이 소송이 자신들 최대의 실수임을 인정하게 된다.
■ 전투지대(War Zone)
미국·독일/ 1997년/ 감독·제작 항크 르바인/ 75분/ 다큐멘터리/ 컬러
거리에서 남자들의 휘파람과 곁눈질 등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또, 남자들은 어째서 그런 행동을 하는가? 매기 해들리-웨스트는 미국 전역의 거리를 돌면서 자신을 공격한 남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으로 응수한다.
76분 간 그녀는 자기 자신이 실제로 위험에 노출된 채 거리의 남자들에게 질문한다. “왜 낯선 사람을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하죠?” 그 과정에서 그녀는 맞기도 하고, 욕도 먹고, 사과도 받았으며,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남자와 매혹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그러한 대화를 통해 감독은 분노와 공포, 좌절, 때로는 애정, 존경 등의 감정을 느낀다.
이 영화는 거리 폭력의 원인이 사회구조적이라는 것을 간과하지 않고 있다. 남성들로 하여금 거리에서 여성들을 괴롭히고 쫓아가고 만지고 모욕하도록 조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생물학적·사회적·경제적 토대임을 영화는 알고 있다. 감독은 “하지만 자신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우리 여성들은 강간의 공포를 느낀다는 것, 따라서 그러한 행위를 그만두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나는 다만 얘기하고 싶을 뿐”이라고 덧붙이고 있다.
■ 게리와 루이스
캐나다/ 1996년/ 감독·제작 스툴라 군나손/ 74분/ 다큐멘터리/ 컬러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전대령이었던 게리와 진보적 기자 루이스. 게리는 ‘진실과 화해위원회’에서 ANC를 타도하기 위한 군대의 작전에 대해 증언한다. 이로 인해 그는 어느쪽에서도 신뢰받지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취재기자 루이스는 이러한 게리에게서 군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게리는 복수를 하기 위해, 루이스는 기사거리를 얻어내기 위해 서로를 이용한다. 그러나 극도로 적대적이던 그들의 관계는 점점 사랑으로 발전하고 결국 결혼에까지 이른다. 영화는 끊임없이 고뇌하는 게리와 그의 치명적인 약점을 껴안아야 하는 루이스의 갈등을 담담하게 추적하고 있다.
■ 버마일기
태국·네덜란드/ 1997년/ 감독·제작 잔느 할러시/ 55분/ 다큐멘터리/ 컬러
버마, 따뜻한 계절풍과 황금빛 하늘 위로 부처님이 미소짓는 나라. 그러나 사진기자 잔느 할러시는 부처의 미소 뒤에 숨은 비극적 현실을 놓치지 않고 카메라에 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버마에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틴 왕을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인권침해의 실상을 목격하게 된다. 틴 왕은 1988년 군사쿠데타 직후, 태국 접경지대로 탈출해 투쟁을 전개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는 쌍둥이 딸의 질병으로 인해 호주로 망명할 것을 결심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틴 왕을 비롯해 국경지대에서 투쟁하고 있는 수백명의 고통, 슬픔, 기쁨에 관한 기록이다. 여기엔 야당 지도자인 ‘아웅산 수지’와 캐나다인 교사 캐빈 해프너의 진술도 포함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