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인권운동사랑방 등 4개 인권단체는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내 거주 탈북자들이 겪은 충격적 인권유린 실태를 폭로했다.
공항부터 시작되는 욕설
탈북자들이 겪은 인권유린행위는 입국 직후부터 시작됐다. 공항에서 정착보호시설로 이송되는 때부터 안기부 직원들의 욕설과 모욕적 발언들이 쏟아지는 것이다. 그 가운데 “가족을 버리고 온 인간쓰레기”라는 욕설은 가장 고통스럽고 참기 힘든 모욕이라고 탈북자들은 밝혔다. 그렇잖아도 북한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을 가진 이들에게 이같은 욕설은 육체적 고문 못지 않게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이어 대성공사(영등포구 신길동 소재)라 불리는 정착보호시설에 도착하면 고문과 가혹행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안기부, 기무사, 경찰, 국군정보사령부 등 5개 기관으로 구성된 합동신문조는 ‘위장귀순’인지 여부를 가린다는 목적 아래 약 1주일에서 한달 가량 신문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무수한 폭행이 가해지는 것이다. 인권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합동신문조는 “말 안 들으면 오늘밤이라도 판문점으로 보내 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퍼부었으며, 심지어 옷을 벗기고 생식기를 만지는 고문까지 자행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사람은 탈북자 가운데 약 80%에 이른다고 인권단체들은 밝혔다.
국적 취득 후에도 기본권 제한
이처럼 고문을 당하다보니 후유증을 겪는 사람도 잇따랐다. 이정국 씨는 몽둥이로 매질을 당하다 손가락이 돌아가는 부상을 입었고, 엉덩이를 무수히 구타당해 지금은 노동능력을 거의 상실했다고 밝혔다. 또 허철수 씨는 공황장애 증세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고, 이민복 씨는 불면증 때문에 육군통합병원 정신과에서 두 차례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다.
탈북자들이 겪는 고통은 조사과정에서의 고문과 가혹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이들은 국내에 입국한 뒤 2년이 경과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 받고 비로소 국적도 취득하게 된다. 그러나, 국적을 취득한 이후에도 이들은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와 삶을 누릴 수가 없었다. 안기부, 경찰의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데다, 직업을 구하기 힘들어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최저생계 유지조차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탈북자 가운데 직업이 없는 경우는 약 7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안기부, 탈북자 모임 와해공작
또한 이들은 결사․표현의 자유 등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각종 기본권마저 제한 당하고 있다. 이만복 씨는 안기부의 승인 없이 신문 등에 글을 기고했다는 이유 때문에 대성공사 지하실로 끌려가 구타와 협박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열악한 탈북자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자유북한인협회’가 결성되기도 했으나, 안기부는 이마저도 각종 회유와 협박 등을 통해 와해시키려 했다고 탈북자들은 밝혔다.
탈북자들은 대개 남한 사회에 동경을 품어오다, 남한에서 뿌린 삐라에서 “귀순하면 25평의 집과 정착금 5천만 원,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라고 인권단체들은 밝혔다. 그러나, 탈북자들의 이런 꿈은 입국과 동시에 산산 조각나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남한에 온 것을 후회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권단체, 법적 대응키로
지난해 12월 18일 이후 탈북자들을 재상으로 집중조사를 벌인 인권단체들은 “탈북자들은 북한에 대한 정보원 또는 북한을 비방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도적 시각에서 보호되어야 하는 존재”라고 강조하며 △고문 내지 가혹행위의 중단과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탈북주민에 대한 당국의 조사방식 개선 △2년을 경과한 탈북주민들에 대한 근거 없는 감시와 감독 중단 △탈북주민 정착을 위한 종합적 계획 수립 △탈북주민 지원업무에서 안기부 간여 최소화 △탈북주민의 결사․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촉구했다.
또한 인권단체들은 국제적십자사와 유엔사무총장 앞으로 탈북자 인권침해 사실을 알리는 한편, 탈북자를 조사한 수사관에 대해 형사제소와 손배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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