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기구와 인권법
국민회의는 지난 11월 24일 법무부와의 당정협의를 통해 국가인권기구(국민인권위원회, 약칭 인권위)를 특수법인화하기로 최종합의하고 그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권법안을 국회 법사위에 제출했다. 이에따라 인권위는 시민사회단체의 환영은커녕 반발만 사는 가운데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권위는 각종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해 피해를 구제하고, 인권현실의 개선을 위한 정책마련, 홍보, 인권교육 등의 활동을 하는 기구로, 지난해 정부는 인권위의 설치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바 있다.
이에 시민사회단체는 인권위가 그 역할을 올바로 다 하기 위해서는 위상은 물론 인사․업무․재정 등의 독립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돼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이와 관련해 70여개 단체로 구성된 ‘올바른 국가인권기구 실현을 위한 민간단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독립적인 국가기구로의 인권위 설치 △인권위원의 공무원신분 보장 △인권위원 선출과정의 투명성 보장 △정규예산 편성 △정부간섭의 배제를 위해 인권위의 운영세칙을 대통령령이 아닌 위원회 규칙으로 제정할 것 등을 강력히 촉구해왔다.
그러나 주무부서인 법무부는 ‘인권위가 정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특수법인이어야 한다’는 논리를 동원하면서 인권위의 특수법인화를 고집해왔다. 국민회의 도 정부와 민간단체 사이의 조율 역할을 자임했지만 끝내 법무부의 특수법인화 주장을 수용하고 말았다.
한편 지난 1년간 시민사회계는 올바른 인권법 제정을위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강만길, 이돈명 씨 등 국내민주화원로들은 2차례에 걸쳐 대통령에게 독립적 인권위의 설립을 요청한 바 있고, 지난 4월 17개 단체 소속 인권활동가 30여명은 전례가 없는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국제적으로도 국제앰네스티, 국제고문방지기구 등 대표적인 인권단체들이 법무부안을 비판했으며, 메리로빈슨 유엔인권고등판무관도 “한국의 인권법 제정과정이 투명성을 결여하고 있으며 인권기구가 약체기구화 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공대위측은 “교도소, 경찰, 검찰 등 주된 인권침해 기관들이 법무부 관할인 상황에서 이를 감시해야할 인권위마저 법무부의 영향력 하에 놓이게된다면 과연 그 기능을 다할 수 있겠느냐”며 “법무부의 통제를 받는 인권위라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해 훨씬 더 좋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현 인권법안대로 인권위가 설치된다면 이는 소외된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에 면죄부를 부여하기 위한 알리바이 인권위를 설치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