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전투기가 날아오더니 폭격을 시작하더군요. 사방으로 떨어지는 포탄을 피하기 위해 소나무 밑으로 숨어 들어갔는데 내 앞으로 독사 한 마리가 기어오는 거예요. 하지만 난 몸을 움직이긴커녕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했어요. 그랬다간 틀림없이 포탄에 맞아 죽거나 반병신이 될거였기에…". 이곳 매향리에선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전만규(46·매향리 미공군폭격소음 공해 대책위원회 위원장) 씨는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이곳에 좀 더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했다. 외지인이라도 올 낯이면 미군의 폭격이 중단돼 자유롭게 갯벌에 나가 굴과 조개를 딸 수 있는 평온함을 맛볼 수 있기에, 갓난아이 등에 없고 산보가는 기분으로 동네 한바퀴 돌 수 있기에, 그는 가끔 외지인을 등에 엎고서라도 지난 46년동안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했던 그런 평화를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오폭 22명 사망, 소음 살인적
2000년 2월 16일. 이날도 어김없이 경기도 화성군 우정면 매향리에는 주황색 깃발이 펄럭였다. 미군의 사격연습을 알리는 이 깃발은 지난 51년 매향리에 미군 전투기 사격장이 만들어진 이후 반세기동안 토요일과 일요일 등의 공휴일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내려지지 않았다. 사격장에 전투기가 하루 동안 쏟아 붓는 포탄만도 9백여 발, 여기다 주민들이 살고있는 거주지마저 사격 가능한 지역으로 포함돼 있다보니 주민들은 매일이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전 위원장은 "사격장이 생긴 이래 만삭이 된 임산부가 굴을 따다 포탄에 맞아 죽은 것을 비롯해 주민 9명이 목숨을 잃고 13명이 평생 회복할 수 없는 부상을 입었다"며 "지난 해에도 로켓트탄과 버드탄이 마을 한가운데 떨어지는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전투기 저공비행과 폭격으로 인한 소음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 매향리의 소음정도는 국제사회가 주거불능지역으로 정한 90DB을 훨씬 뛰어넘는 80-150DB. 주민 우종근(50) 씨는 "고막이 찢어지는 폭음소리에 내 머리가 잘못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며 "지붕이 내려 안거나 유리창이 깨지는 것은 물론이고 젖소와 닭 등의 사산도 잦아 가축도 못 기르는 실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정부·미군 주민고통 외면
그러나 이러한 주민들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미군당국과 한국정부는 주민들의 신음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미군은 한미행정협정을 이유로 주민들과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으며, 한국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이유로 사격장 이전을 미루고 있다. 따라서 오폭사고로 인한 사상자중 손해배상을 받은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며, 폭음에 소 30마리를 잃은 한 주민은 겨우 1백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울분을 삼켜야했다. 주민 대부분이 땅을 미군기지로 징발당했고, 그나마 생계를 잇던 어업마저 잦은 폭격으로 출정을 못해 심각한 생계위협을 받고 있지만 지난 50년간 어떤 대책도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인, 좋은 실전대상"
"미군은 주민들의 이주를 반대합니다. 주민들이 있어야 조종사들이 실전처럼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곳에는 주한미군 뿐 아니라 일본과 괌, 태국 등지의 미군 전투기까지 날라와 폭격훈련을 하죠". 주민 김동기(46) 씨는 이런 미군의 속셈을 알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투쟁을 시작했다고 했다. 쌓여온 주민들의 분노는 88년 주민대책위원회 건설과 미군기지 점거로 이어졌다. 매향리 주민 1천여 명은 88년부터 3차례에 걸쳐 미군기지를 점거하고 문제해결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군과 한국정부는 경찰과 무장군인을 투입해 시위를 진압했고 주민 2명을 구속시켰다. 그 후 주민들은 심한 무기력증에 빠졌다.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너무도 처참히 짓밟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몇몇 주민들은 새로운 희망을 품고 있다. 지난 98년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판결이 조만간 유리하게 내려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평화․인권단체들이 적극적인 연대를 선언하면서 16일에는 매향리까지 내려와 연대집회까지 개최하고 올라간 것.
농섬에 심은 꿈
갑자기 "쾅"하는 폭음이 들리더니 해양 사격장인 농섬 위로 흰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본래 이곳엔 섬이 많았는데 폭격으로 모두 유실되고 저 농섬도 이제 1/3밖에 남지 않았죠. 저 농심마저 바다 속으로 영원히 가라안기 전에 한번 가보는게 주민들 꿈입니다" 라며 허허거리는 주민들. 이들은 오는 2월 말 다시 한번 미군기지 앞에서 대대적인 집회를 가질 계획이다. 자식들에게 자신들이 겪은 가슴앓이를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