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4/ 박홍규 지음/ 도서출판 사람생각 펴냄/ 271쪽
'시민이 재판을!' 이란 이 책의 제목 자체가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사뭇 도전적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재판이란 누가 하는 일이고 누구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봉건적인 과거시험과 동일시되는 사법시험을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통과하여 위엄 있는 법복을 입고 전용 엘리베이터와 복도를 통해 등장하는 직업적인 법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귀하디 귀하신 법관과 보통사람이 나란히 앉아 재판을 한다는 구상 자체가 한쪽에선 펄쩍뛸 일이요, 다른 한쪽에선 송구스러워 꿈도 못 꿀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우리의 현실과 사고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극히 '예외'라는 점을 이 책 전반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배심제이든 참심제이든 간에 시민의 사법 참가가 전혀 인정되지 않는 나라, 요컨대 직업적 재판관으로만 재판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는 것이 필자의 현실인식이다. 그 증거는 필자가 각 장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로부터 영미 등 세계 각 국이 취해온 시민재판제도의 역사와 성격에서 드러나고 있다.
또한 필자가 망라한 각 국의 배심제와 참심제의 빛과 그늘은 시민의 사법참가의 기초이념을 확인시켜준다. 사법도 국가기능의 하나이므로 '시민의,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중 시민에 '의한' 사법이야말로 그 본질이다. 이에 우리는 '권력독점적인 관료사법'에서 '국민주권적인 시민사법'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필자는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