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회의에서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를 초래한 대법원장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땅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으며, 25일에는 “정치성향이 강한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막말을 하며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 지난 신용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하는 직무수행을 하여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태도이다.
무엇이 좌편향이고 불공정이라는 말인가
2009년 유엔 사회권위원회에서도 'PD수첩'의 작가와 PD들이 보도내용으로 긴급체포되는 현실을 우려하는 질문들을 했다. 시민들과 작가들의 문화향유권, 문화창작권을 제약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법무부는 이는 사회권이라기보다 자유권이니 얘기하지 말라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결국 사회권은 아니지만 자유권을 침해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PD수첩' 탄압행태가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반응이었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보도내용이 정부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기소되고 손해배상 청구를 받는다면 언론은 그저 ‘정부의 개’로서 정부정책을 찬양하며 꼬리를 흔드는 일밖에 못할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하였다.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기능에 관한 점인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경우 방송사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면 언론사로서의 비판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으므로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언론의 기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교사와 공무원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고 기소당하는 현실은, ‘무조건 입 다물라’는 독재의 망령일 뿐이다. 그래서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한국의 이러한 상황에 우려를 표현했고 올해 한국을 공식방문하기로 하였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표현행위가 처벌당한다면 어떠한 표현도 할 수 없고 결국에는 생각조차 재단당할 수밖에 없기에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재판부는 그저 "이들의 행위는 공익의 목적에 반하는 게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는 헌법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일 뿐이다.
법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국제사회의 합의
보수언론과 한나라당은 사법부를 권력의 휘하에 두려고 이용훈 대법원장과 ‘우리법연구회’를 흔들면서 인적 청산(보수언론의 입장과 다른 사람 쫓아내기)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법연구회’와 ‘공판중심주의’가 무죄판결을 이끈 것인 양 말한다. 안상수는 “이념적 서클인 우리법연구회도 반드시 해체돼야 한다.”며 사법개혁의 핵심인양 떠들어대고 있다.
그러나 우리법연구회의 전 회원이 신문기고에서 밝혔듯이, 보수기득권 세력이 문제 삼고 있는 9건의 무죄 판결(미네르바 사건, 촛불집회 중 야간집회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PD수첩 사건,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 대한 공소기각 판결, 용산사건에서 수사기록 등사 결정 ) 중 2건 만이 우리법연구회의 전 회원들이다. 그럼에도 ‘우리법연구회’를 표적 삼는 것은 ‘사법부 길들이기’이다. 재판의 내용이나 재판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비판이 아니기에 이러한 공격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흔드는 일이다.
이미 1980년대에 국제사회에서도 법관의 시민적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198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사법의 독립에 관한 기본원칙’(유엔총회 40회 40/32)에서는 법관에게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는 60년대 말부터 법관 조합이 결성되었으며 1985년에 설립된 유럽법관조합에는 여러 나라들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도 학술적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공격하는 것은 이후에는 법관이 양심에 따른, 법의 상식에 따른 재판을 할 수 없게 하려 하는 의도일 뿐이다.
사법의 독립에 관한 기본원칙 8항의 “판사는 언제나 자신의 사무실과 중립성과 사법부의 독립의 존엄성을 유지하며 재판을 진행한다”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다르다고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면, 돈 없고 빽없는 사람들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광우병 의심소가 들어와서 자신과 이웃의 건강이 걱정이 되어 거리에 나가고, 제대로 된 생계대책이 없이 거리로 쫓겨나는 상가세입자들이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가도, 정부는 꿈쩍하지 않아 우리의 인권은 나아지지 않은 채,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해 처벌까지 받는 세상을 그저 우리는 바라보아야만 할 것이다.
무죄가 느는 게 공판중심주의 때문이라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무죄가 늘어났다면서 공판중심주의를 공격한다. 조선일보는 “사법부에서 무죄가 늘어난 것은 형사재판의 '공판(公判)중심주의'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검찰이 정치권을 옹호하는 칼이 되어 ‘위법’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기소하고 있기 때문에 무죄가 늘고 있지 않은가.
보수우익단체가 폭력을 행사해도 경찰과 검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보수단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천막을 부수며 전기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했어도 이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용산에서 과잉진압으로 숨진 철거민들에 대한 추모행사는 언제나 불법시위로 해석․적용하여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구속하였다. 이러한 편향된 수사와 편향된 기소가 있는 한 무죄가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에서는 “검사수사기록보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재판당사자들에 대한 심리결과를 판결에 더 반영하는 공판중심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독립성이 강한 ‘판사의 역할’을 축소하고 정치권력화된 '검찰의 입김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이다.
형이 확정될 때까지 모든 사람은 무죄로 추정하는 것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또한 죄가 의심되는 사람일지라도 ‘변론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더구나 권력에 너무나도 충실한 정치검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검찰 수사기록에만 의존한다면 ‘공정한 재판’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인권의 눈으로 사태를 바라봐야
지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부추기는 ‘사법부 개혁과 사법부 독립성’이라는 논쟁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할 게 있다. 바로 인권의 원칙과 법의 지향이다. 지난해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한국심의에서도 정부에게 권고한 바와 같이 한국의 사법부가 국제인권규약을 고려하거나 그에 입각한 재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인권의 원칙에 입각한 판결이 너무나 부족하다. 실제 사회권 규약을 원용한 판결이 거의 없는 현실은 척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왜 사법부의 독립성이 필요한지’, 인권의 관점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이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러한 관점에서 집행되고 판결되는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그저 권력구조, 삼권분립이라는 관점에서만 이 사태를 본다면 이는 그저 권력자들의 파워게임에서 놀아날 것이다.
덧붙임
명숙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