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대사면'의 계절이 돌아왔다. 새 밀레니엄의 첫 광복절이고 하니 사면은 "큰 폭"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예상들이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3만명 사면․복권설'이 우리에게 조금도 감격적이지 않다. 이를테면 '사면 불감증'인 셈이다. 우리 사회에서 '대사면'은 언제나 정치놀음판의 한낱 정략에 지나지 않았고 '대사면' 뒤에 우리는 언제나 실망을 되씹어야 했다.
아니나다를까 이번 법무부 장관의 사면․복권 건의도 과거의 여느 사면․복권과 다르지 않은 일관된 원칙이 관철되어 있다. 즉 '최소한의 정치범 사면, 최대한의 정치꾼 사면'이 그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김현철, 한보․청구비리의 홍인길,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정선거를 저지른 정치인들에 대한 사면․복권을 건의했다. 정치꾼이란 정치꾼은 모조리 다 사면․복권시키겠다는 것이다.
반면에 7월 26일 현재 우리나라 감옥에 갇혀 있는 125명의 양심수 중 95명이나 되는 미결수들은 전혀 법무부 장관의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게다가 400명을 훨씬 넘는다고 평가되는 정치수배자에 대한 수배 해제방안은 흔적조차 없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 말대로 "새 밀레니엄의 첫 광복절이고 남북 화해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노태우 정권 시절에 가능했던 미결수나 수배자 사면이 왜 지금은 안 된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과거 정치인들은 무슨 연례행사라도 치르듯이 해마다 "대사면"을 되뇌면서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자기들의 '공범'을 슬며시 '양심수 사면'에 끼워 넣곤 했다. 요란스럽게 '국민 대화합'을 떠들어봤자 언제나 사면 뒤에 '대화합'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국민 대화합'은 정치인의 잔재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국가보안법으로 국민의 정치적 자유를 억누르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현장을 특공대 투입으로 무지막지하게 유린하면서 도대체 무슨 '국민 대화합'을 이루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의 사면․복권이 언제까지나 정치놀음판의 정략으로서 남발되는 이런 더러운 현실에서 우리는 한번쯤은 대통령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하는 대대적인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