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근속 김씨도 파업의 대열로
근속년수 19년인 김 씨. 김 씨는 가설공으로 단기근로계약을 맺고 한국통신에 취업해 줄곧 서울의 한 전화국에서 근무해 왔다. 그는 정규직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력을 발휘해 「하루명령장」(가설, 수리 등의 일 건수)을 사측의 기준선인 5.5건보다 6배가 많은 30-40건씩 처리해 왔다. 계약직보다 약한 노동강도에 근속년수도 짧은 정규직이 연봉 2천5백만원(수당 포함)을 받아 가는 동안, 그가 받은 임금은 1천5백만원(수당 포함)에 불과했다. 하지만 정규직으로 채용되는데 행여 불이익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불평도, 불만도 내보일 수 없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30도를 오르내리는 뙤약볕에도, 전신주와 맨홀을 오고가는 그의 노동은 계속되었다.
정규직 소망 하나로 버텼지만
하지만 조금만 더 일하면 정규직이 되리라던 작은 소망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IMF위기가 닥치자 회사측은 계약조건을 무시하고 90만원대로 일방적인 임금삭감을 단행했다. 두 부모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김 씨에겐 날벼락이었지만 '모두가 어려운 만큼 인내하자'며, 더욱 혹독한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 기간동안 근로자의 날을 제외하고 김 씨가 맘 편히 쉴 수 있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을 정도다.
99년 경기가 회복되면서 정규직들의 임금은 원상회복됐지만 오히려 김 씨의 월급은 85만9천원으로 다시 삭감되었다. 수당도 사라졌고 회사에는 분사와 도급화 소문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어쩌면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것도 이때부터다.
"이대로 당할 수는 없었다." 김 씨가 노조를 결성하기로 마음을 먹고 사람을 찾아다니며 조직하게 된 이유였다.
드디어 지난해 1월 서울 소재 4개 지국의 계약직 대표자들이 모임을 갖고 노조 추진을 결의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해도 너무 한다. 너무 당하고만 있었다"며 회사측을 성토했다. 2월 들어 김 씨와 동료들은 계약직협의회를 발족했고, 3월엔 처우개선과 고용안정을 요구하며 총파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총파업 시도는 준비 부족으로 실패했다. 회사측에 책임자와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너희들은 대화 파트너가 아니다"는 답변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 사이 5월 말 충남본부의 계약직원들이 해고되었고 비공개로 입수한 회사측 문서에서 6월 말 계약이 만료되는 직원들도 해고대상임이 드러났다.
전국의 계약직 노동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계약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으로 구성된 기존 노조에 가입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한국통신의 노조 규약이 비정규직도 가입대상으로 포괄하고 있었기 때문에 복수노조 금지규정에 묶여 계약직 노동자만의 별도 노조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다.
힘겹게 결성한 합법노조
의외로 노조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임금과 고용형태가 틀리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계약직 노동자들의 노조가입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는 "7천여 명이 해고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노조원들이 갹출해 지불하는 희생자 구제 기금이 불어나 안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따라서 계약직 노동자들의 출구는 단 하나, 계약직만의 노조 설립을 위해 노조규약이라는 걸림돌을 없애는 것이었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조 측에 노조설립에 방해가 되는 규약의 변경을 강력히 요구했다. 정규직 노조 중앙집행부도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9월 열리는 대의원대회에서 규약을 변경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투표결과 10표가 모자라 규약변경은 무산되었다. 분노한 계약직 노동자들은 대의원대회가 열리는 대전 연수원에 몰려가 단상을 점거하고 연수원 정문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한 뒤 정규직 노조원들의 귀가를 막고 나선 끝에 한 달 후 대의원대회를 속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합법노조로 가는 길은 그렇게 험난했다.
한달 만에 속개된 10월 대의원대회에서 마침내 노조 규약 상의 관련 규정이 삭제되었다. 정규직 노조 중앙집행부의 무성의와 회사측의 온갖 회유를 이겨내고 얻은 성과였다.
법 위에 군림하는 구조조정
합법노조를 만들었는데도, 회사측은 여전히 계약직 노동자들을 무시했다. 관할관청으로부터 노조필증을 교부 받은 뒤, 회사를 상대로 6차례나 교섭을 시도했지만 회사측은 단 한 차례도 응하지 않았다. 11월에는 중앙노동위원회의 중재도 신청했다. 그러나 회사측으로부터 날라 온 대답은 6천여 명에 대한 해고 통보였을 뿐이다.
19년 근속한 김 씨도 11월 말 해고되었다. 사유는 "계약기간이 지났다"는 것. 김 씨는 "계약기간이 언제까지인지조차 몰랐다"고 말한다. 이미 19년간을 그렇게 일해왔던 김 씨였다. 한편, 대구 지방노동위원회는 "계약기간이 정해졌더라도 자동으로 갱신된 경우라면 부당 해고"라는 판정을 내려 한국통신측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그래도 회사측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공익사업장으로선 이례적으로 합법파업이 가능했던 것도 회사측의 태도가 워낙 안하무인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3일 8백여 조합원의 참여 속에 시작된 총파업이 40일을 넘어섰다. 그러나 파업 중에도 비보는 이어졌다. 114 여성 계약직 노동자 1천5백명을 2월말까지 감축하겠다는 회사측의 발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