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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가톨릭 신자들, 분노의 '침묵'

국보법 법전 등 제단에 바쳐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지 헌 부대에 담으면 부대가 찢어집니다"

19일 저녁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쩌렁쩌렁 울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안충석 신부. 안 신부는 이날 '3대 개혁입법 촉구를 위한 천주교 시국기도회' 강론에서 정부를 호되게 비판했다. "개혁의 힘은 국민 대다수의 열망에서 오는 것이지 부당하게 선동된 여론이나 다수 의석에서 나오는 게 결코 아닙니다." 안 신부의 강론에 참석자들은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혁을 한답시고 수구세력과 손잡고 개혁법안들을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는 정부에 쌓인 분노들이 그렇게 하나로 모아졌다.

기도회 끝자락 봉헌 순서가 되자 제단에 '국보법 법전, 인권과 평화의 저울, 확대 복사된 만원 짜리 지폐'가 올려졌다. 모두 3대 개혁입법 대상들을 상징화한 것이다. 이어 참석자들은 상징물 앞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항의엽서를 가져다 놓았다. 엽서들은 각각 민주당, 자민련, 한나라당으로 보내질 터였다. 자신의 이름을 정성스레 쓰는 학생들, 엽서를 두 손에 고이 들고 가는 수도자들의 모습에 분위기는 사뭇 숙연했다.

기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은 초 하나씩을 들고 명동성당 들머리로 나섰다. 침묵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보이는 것은 촛불로 환해진 얼굴, 그리고 들리는 것은 사진기 누르는 소리와 행인들의 잡담뿐. 하지만 이들의 침묵은 그곳의 어떤 소리보다 더 힘찬 함성이 되어 외치고 있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올바른 국가인권위를 만들라, 실효성 있는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라" 정부는 이들의 '침묵'에 언제쯤 귀를 기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