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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논평> 1인 시위, 그 서글픈 자화상


어느 날부터 ‘나홀로’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뜻을 함께 하는 이들과 한데 어깨를 걸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정석’이란 걸 몰라서가 아니다. 집회와 시위가 차고 들 수 없는 금단의 땅에 발 한번 붙이기 위해, 걸려들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는 거미줄 법망을 피해 마련한 궁여지책인 것이다. 혹자는 평화시위의 모범이자 새로운 집회문화라고 치켜올리기도 했지만 1인 시위는 분명 한데 모일 수 없고 한 목소리로 외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서글픈 자화상에 불과하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권리가 온전히 숨쉴 수 있다면 결코 필요치 않은 인공호흡기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도 일개 경찰서장에게 떼이게 됐다. 정광섭 서울 종로서장이 “변형 1인 시위는 2인 이상이 참가한 집회가 분명하므로 집시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며 1인 시위마저 막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삼보일배로 청와대까지 가겠다던 종교인들을 가로막고 김영삼 씨 집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이에게 불법이라며 가로막았다. 아예 모든 사람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사소한 메모쪽지 하나도 대서특필되는 정치인과 재벌들이 이 권리를 애지중지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의사표현의 효과적인 수단을 독점하고 있는 그들에게는 집회․시위의 자유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뿐이다. 집회․시위에 의한 의사표현은 ‘가난한’ 이들의 마지막 보루이다. 빼앗기고 무시당하고 외면 받은 사람들의 유일한 타종 수단을 박탈하려 하는가? 우리 사회의 병폐와 처방을 얘기할 수 있는 ‘공공의 광장’을 폐쇄하려 하는가?

경찰이 애지중지하며, 많은 시민단체가 1인 시위로 비켜가려 했던 집시법을 똑똑히 보자. 91년 노태우정권 때 주요내용이 개정되고 98년 일부내용이 개정된 현행 집시법은 집회․시위를 보장하는 데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주요 공공기관은 금테를 둘렀고, 주요 기업은 외국공관 유치작전을 펼쳐 1백 미터의 경계선을 도심 전역에 설정하여 집회․시위로부터 달아났다. 그 막다른 골목에서 치켜든 1인 시위 피켓은 그 절박성은 인정될지 몰라도 진짜 싸움은 아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개 경찰서장이 나서서 우리에게 그 점을 깨우쳐 주었다. 썩어빠진 집시법의 문구와 씨름하느냐, 대수술에 나서느냐는 결단은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