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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2천호 기획 <인권하루소식> 이모저모 ② <끝>

‘보도’에서 ‘운동’으로


<인권하루소식>(이하 <소식>)은 보도에 그치지 않고 행동을 조직한다. 그것이 인권신문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소식>이 만들어낸 대표적인 ‘작품’은 98년 대학가와 시위 현장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공권력의 불법 불심검문에 대한 불복종운동’이다. 귀찮지만 불쾌하지만 감수하던 경찰의 불법적인 불심검문 관행에 제동을 건 것은 “악법의 씨가 마를 때까지 우리 모두 감옥에 가자(97년 5월 13일 시평)”는 <소식>의 선동이었다.


발행인 없는 1천호 기념 행사

한총련 탈퇴 각서 강요, 그 태풍 한가운데서 <소식>은 “한총련을 탈퇴하느니 탄압을 견디며 감옥에 감으로써 정신의 젊음을 지키라”(97년 8월 6일)고 외친다. 서준식 전 발행인이 쓴 이 칼럼은 그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97년 11월 5일, 1천호 발간을 맞은 <소식>의 머릿기사는 “양심수는 있다”였다. 당시 정치권에서 “양심수가 하나도 없다”고 공언한 직후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권영화제를 개최하여 ‘레드헌트’를 상영했다는 것이 발행인 구속의 표면적인 구실이었다. 그러나 이후 수사 과정에서 문제의 칼럼이 공안당국의 심기를 건드린 필화사건임이 드러났다. 발행인을 장안동 대공분실에 두고 치뤄진 1천호 기념행사장은 규탄대회장으로 바뀌었다. 잔인한 겨울이었다.


작은 신문, 큰 격려

“<소식>을 선정하는 감회는 각별하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인권전문 팩시밀리 일간지’가 우리 땅에서 간행되고 있다는 자부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소식>의 기사들이 사실은 ‘제도’ 언론 또는 ‘거대’ 언론이 앞서 다뤄야 할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외면당하고 있다는 데서 우리는 특별한 부끄러움과 특별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민주언론상 선정 이유에서)
<소식>은 96년 11월 제6회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이 선정한 민주언론상 특별상, 2000년 12월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 선정한 ‘민주시민언론상’을 수상한다.


팔 걷어붙인 고마운 ‘재주’들

“근 1년여의 궁리 속에 찾은 지면이 <소식>”이라며 혜성처럼 등장한 만화가 이동수 씨는 97년 8월 16일부터 ‘만화사랑방’을 게재, 인권만평의 지평을 열었다. 또한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는 기획의도로 97년 3월 4일 시작된 ‘인권시평’에는 지금까지 40여명의 필진들이 나서서 원고료 한푼 없는 <소식>에 성심성의껏 기고해 왔다.


새롭게 또 새롭게

팩스와 우편발송으로 시작된 <소식>은 전자통신망의 발전에 따라 95년 12월 10일 컴퓨터통신서비스, 96년 6월 인터넷 서비스, 98년 10월 전자우편 서비스를 시작한다. 창간 때부터 시작된 ‘사설’에 대한 고민은 2000년 1월 15일 시작된 ‘논평’게재로 뒤늦게 실현된다. <소식>의 나이먹음에 따라 얻은 특별한 열매도 있다. 5백호 발간기념으로 본격 운영하게 된 ‘인권정보자료실’과 3주년 발간 기념행사로 겁없이 구상한 ‘인권영화제’가 그것이다.


인권문제의 지형을 바꾼다

경찰이나 검찰에 잡혀가고 감옥에 가는 것만을 인권문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팽배한 때, <소식>은 사회권과 집단권을 포함하는 진보적 인권개념을 향했다. 때로는 ‘그것도 인권이냐’는 반문이나 지적이 되돌아왔다. 사실 확인의 끈질김과 인권 개념에 대한 탐구를 병행하며, 아동 인권과 국제 인권 등으로 관심을 확장시켰다. 앞으로도 <소식>은 인권문제의 지형을 바꾸기 위해 도전할 것이다. 인권침해 소식이 없는 ‘평화’의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