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주]
세상에 너무나 크고 작은 일들이 넘쳐나지요. 그 일들을 보며 우리가 벼려야 할 인권의 가치,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질서와 관계는 무엇인지 생각하는게 필요한 시대입니다. 넘쳐나는 '인권' 속에서 진짜 인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나누기 위해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들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매주 논의하고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인권감수성을 건드리는 소박한 글들이 여러분의 마음에 때로는 촉촉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다가가기를 기대합니다.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이후 정부의 대응이 예사롭지 않다. 경찰의 물포 살수에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임에도 일말의 사과도 없이 당일 집회 참가자들과 44개 주최 단체에 대한 소환조사와 압수수색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가 뿌리 뽑겠다는 불법 폭력 행위의 대부분은 차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밧줄 당기기와 차량 훼손이다. 시위대와의 직접 충돌을 막겠다며 2003년에 처음 등장한 차벽은 집회 자체를 원천봉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매번 대규모 집회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포와 결합해 사람을 해치는 사실상의 무기 역할을 했다. 집회 이후 박근혜 정부의 사과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경찰 책임자의 유감 표명 정도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1200명의 경찰인력을 투입해 수사를 진행하고, 기업체에 수사를 위해 노조원 명단을 내놓으라는 요구까지 하면서 마구잡이 소환을 시작했다. 언제나 박근혜 정부는 상상 그 이상이었지만 이번 대응은 너무 공세적이어서 잘 접수가 되지 않았다. 이런 혼란은 24일 국무회의에서 있었던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리가 되었다.
"특히 남과 북이 대치하는 상황인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고 전 세계가 테러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때에 테러 단체들이 불법 시위에 섞여 들어와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
"이번에야말로 배후에서 불법을 조종하고 폭력을 부추기는 세력들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해서 불법과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내야 할 것"
"특히 구속영장이 발부된 민노총 위원장이 시위 현장에 나타나서 나라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폭력 집회를 주도했고, 대한민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한 통합진보당의 부활을 주장하고,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까지 등장했다"
정부는 애당초 집회 현장에서의 경찰 대응, 차벽과 물포의 위법성 여부에는 관심도 없었다. 차벽으로 집회를 원천봉쇄할 때부터 예상되었던, 차벽을 둘러싼 공방을 불법 폭력 행위로 낙인찍으면서 그날 집회를 조직한 ‘세력’을 겨냥한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그 세력을 테러집단에 비유하고 1년 전 해산시킨 통합진보당을 언급하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정부의 노동개악에 맞서는 그 ‘세력’ 민주노총
정부는 8월 6일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올해 하반기 정부의 핵심 목표로 노동개혁을 선언했다. 9월에는 한국노총을 거의 협박해 노사정 합의를 만들어냈고, 현재는 관련 법률 개정의 국회 처리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정부 노동개악의 핵심은 사장 마음대로 해고하고 임금을 깎을 수 있도록 하는 것,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는 것,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전반으로 파견노동을 허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사용주의 노동법 위반을 적극적으로 관리감독하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조합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대다수 사업장에서는 부당해고, 불법파견이 횡행했다. 그나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사업장들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힘과 법제도를 통해 최소한의 권리를 방어해내고 있었다. 정부가 목표로 하는 노동개악은 바로 이렇게 노조로 조직된 사업장들에서 만들어낸 노사관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부당해고와 불법파견이 일반해고와 합법파견이 되도록 법제도를 개정해 노동자들이 기댈 언덕을 없애려고 한다. 민주노총은 이를 막기 위한 싸움을 벌여내야 했고, 정부도 노동개악의 성패는 이 싸움에 달려 있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동개혁은 반드시 올해 안에 이뤄져야 한다며 초당적인 협력을 부탁한다. 11월 10일 국무회의에서도 올해 안에 반드시 노동개혁 입법이 통과되어야 한다며 법안이 자동 폐기될 때는 국민들이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국회를 강하게 압박했다. 14일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발표된 정부담화문은 노동개혁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정부정책에 반대하는 불법적인 정치파업이라며 민주노총을 비난했다. 그리고 이날 집회에 참석하는 공무원, 교사들에 대한 협박으로 일관했다. 10만 명이 모인 총궐기 이후, 24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다시금 국회를 비난하면서 노동법안 통과와 FTA 비준을 촉구했다. 집회 참여자들을 테러단체에 비유하면서 말이다. 12월 국회 회기 내 통과를 목표로 군사작전을 벌이듯 민주노총 조합원과 집회 참여자들을 때려잡고 있는 것이다. 1년 전 정부는 5명의 국회의원과 10만 당원이 있는 통합진보당을 해산시켰다. 원내에서 가장 완강하게 정부여당에 맞서던 ‘세력’을 해산시킨 것이다. 이제 정부는 80만 조합원의 민주노총을 정조준하고 있다. 전교조와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은 그 서곡이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
11월 14일 서울역에서는 민중총궐기에 함께하는 빈민•장애인대회가 진행 중이었다. 홍대에서 가게를 하다가 건물주의 횡포에 모은 돈을 다 날리고 쫓겨났다는 분이 말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고, 그래도 이렇게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정부의 민주노총 탄압이 80만 조합원에 대한 탄압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인간답게 살고 일하기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겨냥하는 것이다. 운동을 겨냥하는 것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당장 12월 5일로 예고된 2차 총궐기에서 주최 측이 1차 때처럼 ‘투쟁하자’, ‘세상을 뒤엎자’라는 구호와 쇠파이프 등 시위용품을 준비해오라고 한다면 금지통고하겠다고 한다. 쇠파이프는 그렇다 치자. 이제는 투쟁하자는 구호와 세상을 뒤엎자는 외침도 경찰의 허가 없이는 ‘불법’이 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활발해진 반핵집회 이전까지, 집회시위를 하는 게 이상한 나라였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자신들의 요구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일본인이 집회를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뭐가 있냐고 묻자, 한 일본인 학자가 집회를 함으로써 집회를 하지 않는 사회에서 집회를 하는 사회로 변하게 되었다고 답했다고 한다. 후쿠시마 이후 변화한 일본 사회의 모습 자체가 엄청난 사회변화였다는 것일 게다. 이는 단지 거리에서의 집회시위 그 자체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거리로 나오기까지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토론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운동과 조직의 생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총궐기 이후 민주노총을 정조준하며 정부는 운동과 조직의 소멸을 기획하고 있다.
덧붙임
정록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