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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인권하루소식 2천호 기획 ‘인권하루소식의 발자취’ ⑨ 2001년을 돌아본다!

공안세력의 부활 음모, 뒷걸음질치는 민생


“‘인권’은 이용물에 불과했다”는 <인권하루소식> 올 초의 평가를 김대중정부는 현실에서 증명했다. ‘만경대 발언’ 파문에서 보여지듯 내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은 건재한 가운데, 국정원은 제2의 국가보안법인 테러방지법의 제정을 획책했다. 생존권을 요구하는 대우차 노동자들은 경찰의 곤봉과 방패에 피를 흘려야 했다. 도시근로자 상위 10% 소득과 하위 10%의 소득 격차가 예년에 8.5배이던 것이 올해는 9배로 또다시 뛰었다. 국가 내에 새롭게 만들어진 인권기구들조차 기득권층의 반발을 넘어서지 못하고 표류했다.


‘민생공안’에 짓밟힌 민생

2월 대검공안부가 ‘민생공안’을 선포했다.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은 민생불안 요소이므로 척결하겠다는 것. 결국 짓밟힌 것은 민중의 생존권이었다. 2월 19일 대우차 부평공장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4천여명의 병력을 동원한 경찰력에 강제 진압당한 이후, 부평 지역에선 마구잡이 검문과 불법 연행 등 ‘유사계엄’ 상황이 두 달 가까이 지속됐다. 급기야 4월 10일엔 부평공장 앞에서 전투경찰 병력이 무방비의 노동자들을 집단 폭행해 카메라 앵글에 피가 튈 정도였다. 하지만 어떤 경찰도 처벌받지 않았다. 6월 정부는 민주노총 파업을 앞두고 ‘가뭄 땐 파업 안된다’는 신종 논리를 개발해냈고, 7월 서울경찰청과 서울지검은 ‘도심지 집회를 제한하겠다’, ‘집회 참석 인원을 제한하겠다’는 둥 망발을 일삼았다.


병역거부권, 장애인이동권 앞으로

매년 5백여명에 이르는 청년들이 양심에 따라 ‘군대’가 아닌 ‘감옥’행을 선택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양심적 병역거부권’은 우리사회에서 올해 최초로 공론화됐다. 하지만 보수적인 기독교단은 이단종파의 주장이라며 제동을 걸었고, 국방부는 군 복무 대신 대체복무란 결코 수용할 수 없다며 반격을 시도했다. 12월엔 ‘여호와의 증인’이 아닌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오태양 씨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해 새로운 전기가 펼쳐질 가능성을 희망케 했다.
한편, 1월 오이도역에서 발생한 수직리프트 추락참사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확보 운동에 불을 당겼다.


테러방지법, 국정원 부활 음모

국정원은 9.11 테러 이후 세계적 공안 분위기를 틈타 권한을 대폭 확대․강화하는 테러방지법안을 통과시키려다 인권사회단체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11월 12일 국정원이 테러방지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소식>은 법안이 테러에 대한 모호한 개념을 악용해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음을 알렸다. 국정원은 차관회의,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일사천리로 국회 정보위까지 내달렸다. 하지만 인권단체들의 테러방지법 저지 투쟁도 숨가쁘게 이어져, 결국은 법안의 올해 안 통과를 막아냈다.


국가인권위 출범부터 난항

11월 26일 만 3년 여의 논란 끝에 드디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다. 첫날, 장애인의 승진차별부터 구치소 내 의문사까지 인권침해에 대한 진정이 봇물처럼 밀려들어 국민들의 인권보장에 대한 높은 기대를 증명했다. 하지만 출범부터 국가인권위원회는 ‘인권’을 적대시하는 관료집단의 저항으로 파행을 겪었다. 보호시설에 대한 조사 권한을 약화시키고, 직원 규모를 줄이겠다는 것이 기득권 세력의 속셈. 현재까지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직제령과 시행령이 제정되지 않은 상태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난항을 겪었다. 84년 청송보호감호소에서 의문사한 박영두 씨, 97년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 김준배 씨의 사인을 규명해낸 것은 귀중한 성과다. 하지만 턱없이 미약한 위원회의 법적권한과 시간적 제약은 권력기관들의 비협조와 배짱을 용인하며 철저한 진실규명을 가로막았다.

기대를 모으며 어렵사리 만들어진 국가인권보장의 틀조차 권력기관들의 반발에 부딪쳐 갑갑한 현실을 더욱 실감케 하는 가운데, 2001년은 한해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