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31일 이장형 씨는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를 독직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씨는 84년 6월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된 후 67일간 불법감금된 상태에서 이근안씨로부터 전기고문 등 혹독한 고문을 받고 간첩사실을 허위로 자백했다. 하지만 검찰은 지난해 12월 31일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공소시효가 완성됐기 때문이란 이유였다.
70년대 이전까지 간첩사건들은 남파간첩사건이 대부분이었으나, 70년대 이후에는 총련(재일조선인총연합회) 관련 간첩사건이 주를 이룬다. 사건의 성격도 남북어부사건, 구미유학생사건 등 다양해진다. 이는 7?4남북공동성명 등으로 남파되는 경우가 드물게 되자, 총련계 재일동포와 친인척 관계나 교류가 있다는 이유 등으로 정권유지의 필요에 의해 간첩사건이 만들어졌음을 보여준다. 이씨도 일본에 총련활동을 하는 숙부가 있었다.
이장형 씨처럼 80년대 초 가혹한 고문으로 간첩으로 조작됐던 함주명 씨, 강희철 씨 등은 재심을 청구했거나 재심청구를 준비 중이다. 신귀영씨의 경우는 그나마 지난해 부산지법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졌으나 결과는 미지수다. 이전에도 재심이 받아들여졌으나 대법에서 파기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시에는 피의자로서 최소한 보장되어야 할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상태에서 간첩으로 낙인찍혔고, 현재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책임자 처벌은 물론 명예회복까지 가로막히고 있다. 현재 이씨는 “왜 날 석방시켰냐? 난 감옥 안이 더 편했다”라고까지 말하며, 자신을 아직까지 간첩으로 여기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다고 한다. 간첩혐의를 벗지 못하고서 하늘아래 감옥 아닌 곳이 없다는 절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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