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인도적 범죄’ 단죄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
1994년 프랑스의 한 법정. 2차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를 소탕하는 의용대장으로서 수많은 프랑스인을 고문, 살해했던 피고인 ‘뚜비에’에게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 재판은 단순히 나치에 부역했던 범죄자를 처벌했다는 의미를 넘어, ‘반인도적 범죄의 단죄와 형벌불소급’을 둘러싼 오랜 법리논쟁을 종식시킨 역사적 판결로 기록된다.
형벌불소급 논란 종지부
뚜비에는 1947년 살인 및 국가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도주했고, 20년이 지난 67년 시효가 완성됐다. 그러자 피해자 유족들은 64년에 제정된 법률(‘인도에 반한 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을 근거로 73년 뚜비에를 다시 고소했다. 그리고 89년 뚜비에가 체포되면서, 세기의 재판은 진행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64년에 제정된 법률을 뚜비에 사건에 적용하는 것이 형벌불소급 원칙에 어긋난다는 문제제기와 함께 지리한 법리논쟁이 계속됐다. 마침내 프랑스 법원은 결론을 내렸다. “반인도적 범죄가 형식에 있어서는 새로운 범죄유형이지만, 실질은 새로운 형벌법규가 아니며, 이미 국제관습법상의 범죄행위를 성문화한 것에 불과하다”며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뚜비에의 유죄를 선고했던 것이다.
앞서 프랑스 대법원은 64년 제정된 법률에 대해 “이 법률은 반인도적 범죄의 처벌에 관한 국제조약과 관습법의 원칙을 확인한 것에 불과하고 시효의 이익을 받을 권리는 인권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인권 관련 조약이나 헌법에 위반한 것이라 할 수 없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시효정지→연장→배제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단죄 노력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나치의 학살행위를 완전히 처벌하기 위해 시효의 정지→연장→배제의 순서로 법률을 제, 개정했다. 독일 패망일(45. 5. 8)을 기산점으로 볼 때, 나치의 학살행위(모살)는 1965년 5월 8일에 시효(20년)가 완성될 예정이었으나, 65년 4월 13일 이른바 시효계산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독일 법원이 재판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49년 12월 31일까지를 시효계산에서 제외토록 했다. 이어 69년에는 형법개정을 통해 모살(謀殺)죄의 시효를 30년으로 연장했으며, 79년에는 아예 모살죄에 대해 공소시효의 적용을 배제했다.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기 위한 독일인들의 철저한 노력이었다.
국제사회 역시 1968년 유엔총회에서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시효부적용 협약’을 채택함으로써 ‘시효 없는 처벌’을 명문화했다. 시효부적용 협약 1조는 ‘범행의 시점을 묻지 않고’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다만 가입국 숫자가 많지 않고 서구의 주요 국가들이 빠짐에 따라, 이 협약을 국제관습법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유럽이사회가 유엔협약보다 대상범죄의 폭이 좁긴 하지만 동일한 명칭의 시효부적용 협약을 74년 채택한 데서 드러나듯,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시효부적용 원칙은 이미 국제관습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반인도적 범죄에 시효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국제사회가 합의해 온 대원칙이다. 죄형법정주의와 소급입법금지 원칙 등 법리적 장벽이 존재했지만, 각 국은 여러 입법과 판례를 통해 대원칙을 수용해 왔다. 우리도 시효부적용 협약의 가입과 현실성 있는 입법이 필요하다.
◎도움 : 박찬운 변호사/ 조시현 교수(성신여대 법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