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운동사랑방 후원하기

인권하루소식

"통곡할 수 있게 해 달라"

학살규명 충북대책위 결성, 유족증언대회도 열려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가 결성됐다. 한국전쟁 전후 발생한 민간인학살에 대해 전국 혹은 시․군 차원이 아닌, 도 단위 대책위가 결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회교육센터 일하는 사람들, 천주교 청주교구 정의평화위 등 11개 충북지역 사회단체들은 10일 낮 1시30분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대책위원회」(상임대표 정진도, 아래 충북대책위) 결성 기자회견을 열고, △민간인학살 피해신고센터 운영 △실태조사, 통합특별법 제정운동 등 진상규명 활동 △유족회 결성 지원 및 협력 등 사업계획을 발표했다.

충북대책위는 기자회견문에서 "충북지역에서도 …학살을 입증하는 증언들과 유골들이 묻혀진 것으로 확인되는 학살지들이 보고되고 있"다며, "다시는 이런 비극과 … 만행이 재발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충북대책위를 공식출범"한다고 밝혔다.

이어 낮 2시부터는 '충북지역 민간인 피학살자 유족증언대회'가 열렸다.

곽태영 씨의 아버지는 보도연맹원으로 한국전쟁 발발 직후 경찰서로 소집됐다. 아버지가 집을 나선 직후, 곽씨의 집에 세들어 살던 여경이 '아버지 어디 갔냐, 거기 가면 큰일난다'는 말을 전했다. 이에 곽씨는 황급히 아버지를 쫓아가 '어머니가 칼국수 드시고 가래요'라는 말로 아버지의 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아버지는 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곽씨의 아버지는 다른 보도연맹원들과 함께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로 끌려가 학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곽씨는 그때 만약 자신이 '집안 어른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고 말을 했다면 아버지의 발걸음을 돌릴 수 있지 않았겠냐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리고 "일년에 한두번이라도 통곡할 수 있게 해 달라"며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학살의 진상이 밝혀지지 않아 통곡조차 못하고 있는 다른 유족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청원군 남일면 쌍수리 야산에서 9발의 총을 맞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강영애 씨의 기억을 딸 정순옥 씨가 증언했다. 괴산군 사리면 보도연맹원 80여 명은 청원군 북이면 옥녀봉 골짜기로 끌려가 학살당했다고 유족 윤갑진 씨가 밝혔다. 이때 소집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보도연맹원이 아닌 사람을 대신 끌고 간 경우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장시원 씨는 보도연맹원이던 당숙 2명이 영동군 영동읍 근교 야산에서 학살당했다고 전했다. 당숙 2명은 아는 사람이 '별 것 아니니 도장만 찍으면 된다'는 권유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고 한다. 충북지역 보도연맹원 학살사건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그해 7월 초․중순경 집중 발생했다.

한편, 51년 1․4후퇴 당시 단양군 영춘면 괴개굴로 피신했던 주민 4백여 명이 미군폭격에 죽었다고 조봉원 씨는 증언했다. 조씨는 당시 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유일하게 현재까지 생존한 사람이다. 조씨는 "아무리 전쟁이라지만 이렇게 통탄하고 억울한 일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겠냐"라며, "국가차원의 원인규명과 진상조사를 해야한다"라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