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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하루소식

'진보의련' 사건을 보면 국가보안법이 보인다 ②

건강권 옹호가 국가안전 위협한다?

1심 재판부는 이상이 씨와 권정기 씨에 대해 '이적단체 구성'과 '이적표현물 제작'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이번 진보의련 사건에 대한 1심 재판부의 판결은 '정권안보법'이라 불리는 국가보안법, 특히 이 법 7조가 얼마나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집행될 수 있는지, 그를 통해 사회구성원들의 다른 목소리를 어떻게 억압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건강권 옹호가 국가변란 선전·선동?

국가보안법상 '이적단체구성'(7조 3항)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단체성을 갖추어야 하고 △국가변란을 선전, 선동할 목적을 갖고 있었음이 입증되어야 하며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에서 사건 변호를 맡은 이상희 변호사는 항소이유서를 통해 진보의련은 이러한 구성요건을 전혀 충족시키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먼저 '단체성'과 관련해 이 변호사는 "진보의련은 우리 사회의 보건의료정책을 고민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만든 느슨한 서클 모임에 불과할 뿐, 정해진 강령이나 조직노선도 없고 지휘통솔체계도 갖추지 아니한 구성원간에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 토론모임에 불과하"므로 '단체'로 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99년 대법원 판례에서도 이적단체는 "계속적이고 독자적인 결합체이어야 하고, 그 단체를 주도하는 최소한의 통솔체제를 갖추고 있어야 하며, 강령·규약을 채택하고 구체적인 기구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을 옹호하는 보건의료단체의 활동을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것이라 볼 수는 없다. 이 변호사는 "원심에서 이적성 판단의 근거로 열거한 문건들은 진보의련 준비 과정에서 이루어진 사회과학 학습 자료였을 뿐, 진보의련의 입장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더구나 이들의 이적성 여부를 감정했던 경찰대 부설 '공안문제연구소'는 과거 민주노동당마저 용공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만큼 편향이 심한 기관이다. 과거 대학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을 이적표현물로 몰아넣은 적도 있지만, 이 책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공안기관의 감정결과를 토대로 이적성을 판단한 것은 문제가 있다.

나아가 진보의련은 사회적 약자들의 건강권 확보를 위한 제도적 개혁방안을 관한 토론을 진행하였을 뿐인데, 헌법에 보장돼 있는 건강권을 주장하고 개혁방안을 토론한 것이 국가의 존립과 안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한다면, 이는 헌법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외부인 작성 문건까지 증거로 둔갑

또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 제작 등'(7조 5항)으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적표현물의 제작이나 소지 등의 행위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여야 하고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기 위해 이들 자료를 소지하고 있었을 뿐 국가변란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더구나 1심 재판부가 이적표현물로 인정한 문건들 가운데에는 진보의련이 아닌 '외부인'이 작성한 문건까지 포함돼 있어 이를 이유로 유죄로 인정한 것은 납득되기 힘들다.

지난 31일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서 피고인측은 이와 같은 1심 판결의 부당성을 집중 제기했다. "이적단체의 인정은 … 유추해석이나 확대해석을 금지하는 죄형법정주의의 기본정신에 비추어서 그 구성요건을 엄격히 제한 해석하여야 한다." 이러한 99년 대법원 판례의 취지에 따른다면, 항소심 재판부는 결코 이들에게 국가보안법 유죄를 선고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