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포함한 85명은 이제 그 기나긴 싸움을 목숨걸고 끝장내려 한다. 부디 아름다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너의 모습을 보고 싶다, 사랑하는 아들아." 삼성생명에서 18년 동안 근속하다 해고된 김모 씨는 왜 단식투쟁을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품에서 유서를 꺼내 보였다.
13일 오전 10시 '삼성생명해고자 복직투쟁위원회'(아래 해복투)는 남대문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무기한 노상단식농성을 시작했다. 돗자리와 담요 한 장에 의지해 농성에 들어간 이들은 대열을 에워싼 경찰의 연행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 자리를 지켰다.
98년 10월 삼성생명은 대부분 근속 10년 이상인 여성노동자 1000여 명을 포함해 1723명을 정리해고했다. 형식은 희망퇴직이었지만, 대상자 명단이 나돌고 사직서 표준 양식까지 만들어지는 등 사실상의 정리해고였다. 여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불러온 경제위기로 3조4천억의 적자가 예상된다는 사측의 위협이 한몫을 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 해 956억의 흑자를 냈고, 퇴출기업 삼성자동차 직원들이 대거 전입해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배신당했음을 깨달은 해고자들은 해복투를 결성해 지금까지 만 5년 동안 복직투쟁을 계속해 왔지만 삼성측의 반응은 냉담했다. 2000년 4월에는 사측이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져 회사 앞 항의집회에 대해 1인 1회당 5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게다가 같은 해 3월에는 삼성생명 건물에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6월에는 종로2가 삼성타워에 온두라스 대사관이 들어서 항의집회마저 원천봉쇄 됐다. 외교공간 1백미터 내 집회·시위를 금하는 집시법의 독소조항을 악용한 것. 결국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노상단식농성이다.
해복투 이명숙 부위원장은 "서울, 부산 등 전국 5개지역 조직이 해고무효확인소송, 지역집회, 1인시위 등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봤지만 바뀐 것은 하나도 없다"며 "살아서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심정으로 이번 투쟁을 시작했다"고 절박한 심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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