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검사 출신 현직 국회의원의 어이없는 진정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합리적 결정을 내놨다. 27일 인권위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의문사위)를 상대로 낸 인격권 침해 진정을 기각하기로 결정했다.
최연희 의원은 지난 4월 국회 법사위에서 열린 인권위 첫 업무보고 자리에서 김창국 인권위원장에게 자신이 의문사위로부터 인격권 침해를 당했다며 진정 의사를 밝힌 뒤, 며칠 후 서면으로 진정을 접수시켰다.
2001년 12월 의문사위는 1981년 강제징집된 후 이듬해 의문사한 연세대생 정성희 씨 사건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80년대 전반에 걸쳐 진행된 강제징집과 녹화사업에 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 정형근·최연희 의원 등 당시 실무를 담당했던 검찰과 경찰 출신 현직 의원 3명에게 출두를 요청했다. 그러나 이들이 3개월 넘게 소환에 불응해 조사가 진척되지 못하고 있던 와중에 지난해 3월 이 같은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그러자 최 의원은 자신이 정 씨가 징집될 당시에는 공안검사가 아닌 법무부 보호국 검사였다는 이유를 들어 의문사위가 자신을 관련자로 지목하여 소환한 뒤 이에 불응했다는 점을 언론에 알려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최 의원이 정성희 외 5명의 녹화사업 당시 서울지검 공안검사가 아니었음은 인정되지만 △언론의 보도내용은 기자들이 취재하여 얻은 정보이고, 의문사위가 고의적으로 정보를 제공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설사 그렇다 해도 녹화사업에 관련된 주된 보도내용이 사실에 부합하고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이므로 명예훼손으로 보기 힘들다고 판단했다.
'국회의원 1호 진정'이라는 심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인권위가 국가기관에 의해 희생된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의문사위의 활동을 '공공의 이익'으로 인정하고 최 의원의 진정을 기각한 것은 타당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이번 진정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인권위가 보여준 모습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의문사위 염규홍 조사1과장은 "이 진정은 권력을 가진 현직 국회의원이 인격권을 내세워 생명권을 침해한 중대 범죄행위를 조사하는 의문사위의 출두요구에 불응한 것을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었다"며 "애초 진정 거리도 안 되는 이 사안이 소위에서 결정되지 못하고 전원위원회까지 올라간 것은 권력 눈치보기에서 연유한 것"이라며 인권위의 무소신을 나무랐다.
또 1년을 경과했다는 등의 이유로 각하된 사건이 9월말 현재 총363건인 데 반해 최 의원의 진정은 1년이 지난 사건임에도 유독 받아들였고, 진정이 접수되자마자 조사에 착수한 점은 특혜라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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