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전효숙 재판관)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국가인권위) 위원이 퇴직 후 2년 간 공무원으로 임명,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제한한 국가인권위법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국가인권위 위원들은 공무원으로 임명되거나 각종 선거에도 출마할 수 있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국가인권위 위원들의 정치적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가인권위법 11조 '퇴직 인권위원의 공직취임 제한' 규정에 따르면 국가인권위 위원은 퇴직 후 2년간 교육공무원이 아닌 공무원으로 임명되거나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의한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 유시춘, 유현 위원은 이 조항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인 공무담임권, 참정권, 직업선택의 자유,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2002년 12월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국가인권위법 11조가 교육공무원을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 공직활동을 일정기간동안 포괄적으로 봉쇄하고 있다'며 과도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법원, 검찰, 감사원 등 다른 고위 공무원과 차별하여 공직 진출을 길을 막는 것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밝혔다.
인권단체에서는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예상했던 것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유감의 빛을 내보였다.
다산인권센터 송원찬 활동가는 "국가인권위법 제정 당시 고민을 거듭하면서 나온 결과인데, 인권위원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송 활동가는 "인권위법에 위원들의 공무담임권 등을 제한하는 조항을 삽입한 것은 위원들이 정당 등에 연관되지 않고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고, "비록 법률적으로 과도한 제한이라는 면이 없지 않지만, 인권위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부러 넣은 조항이었다"고 법률의 취지를 강조했다.
국가기관을 상대로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인권과 관련된 정부의 모든 결정과 운영에 대해 발언을 할 수 있는 국가인권위의 위원이 어떤 권력으로부터도 자유롭고 공정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위원들의 헌법소원은 이러한 바람을 무너뜨리는 시작이 아니냐는 것이다.
새사회연대 이창수 대표는 "조항자체를 헌법적인 문제로 다투기 이전에 이 조항은 인권위 위원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자제 장치 즉, 자기 통제 장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며 "위원들 스스로 이것을 없애버리고 정치적으로 완전히 개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인권위원회 위원은 기회가 되면 고위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경력에 '인권위원 했다'며 선거에 출마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특히 인권위원 중 대통령과 국회가 추천하는 위원 8명이 국가인권위 결정에서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결정을 미루거나 관련부처의 눈치보기에 급급했던 국가인권위가 그나마 지난해 네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관련 권고와 이라크 전쟁에 대한 의견에서 최소한의 목소리를 내올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권위원 개인이 정치권이나 현정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권위법 11조의 위헌 결정은 인권위원과 권력의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하다. 인권위 위원들이 얻게 된 '자유'가 인권사안을 결정하는데 '족쇄'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