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라도 한번쯤은 혈연이라는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다른 공간으로의 이동을 꿈꾸기도 한다. 나 또한 가족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외치다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독립'이란 없다"는 가족의 으름장 앞에 독립의 꿈을 접은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최근 장애여성인 한 선배가 가족으로부터 독립한 후 친구들과 함께 집을 얻어 살고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는지 물었다. "혈연중심의 가족 관계가 주는 수직적 억압에서 벗어나 평등한 관계를 만들고 싶었다. 물론 사소한 갈등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함께 사는 친구들이 장애를 가진터라 공감대 형성이 빠르고 서로 잘 지지해준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결혼 혹은 혈연중심의 가족이 아닌 다른 삶을 선택하고 있는 사람에게 때때로 생각지 못한 고통이 다가오기도 한다. 만약 같이 살고 있는 친구가 병원에서 수술이라도 받을 경우 그 선배는 친구의 법적 보호자가 될 수 없으므로 수술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또한 경찰에게 연행될 경우 체포통지서는 같이 살고 있지 않은 가족에게 전달된다.
'가족' 구성의 시작인 '결혼'.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고 가족을 만들까? '사랑하니까'라는 가장 일반화된 답변부터 다양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답변들에서 나타나는 일관된 맥락은 '친밀감에 대한 공유를 오랫동안 지속시키고 싶은 욕망'이 아닐까 하는 나름의 결론을 내려본다. 그것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가족을 만든다. 하지만 친밀감의 공유가 꼭 '결혼' 혹은 '가족'이라는 틀을 통해서만 구현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 틀에 포함되지 않는 친밀감은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보호해야 할까?
이 사회에서 '결혼 혹은 가족' 이라는 틀은 결국 '이성애, 핵가족'의 중심성으로 대표된다. 이성애 중심의 핵가족이 아닌 다른 형태의 모습이 있냐고, 그런 사람이 사회적 존재일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 물음에 대한 답으로 동성애 커플, 독신가구, 독거노인, 소년소녀 가장가구, 복지·생활공동체 등을 떠올려 보시라. 우리의 제도와 법이 이성애 중심의 결혼이나 핵가족을 전제로 구성된다면 이혼율 47%를 육박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건강가족의 붕괴'라는 공포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는 가족의 경계에서 무엇이 발생하는지 귀 기울이고 눈 여겨봐야 한다. 친밀감의 연대가 꼭 '결혼과 가족' 이라는 제도를 통해서만 완성된다는 법은 없다.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써 '가족에 대한 대안'을 만들어보자.
- 2552호
- 최은아
- 2004-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