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닌의 저항학교, 개막작 <아나의 아이들>
올해 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예닌에서 시작된다. 이스라엘 검문소 앞을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팔레스타인 스카프'를 두른 한 여성은 운전자들에게 경적을 울려, 이스라엘 당국의 횡포에 항의하라고 소리친다.
개막작 <아나의 아이들>의 주인공 중 하나인 좌파 활동가 아나이다. 그녀는 예닌에서 집과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연극을 통해서 '저항'을 가르쳐 온 인물. 감독은 아나와 함께 연극을 가르친 아들 줄리아노이다. 아나가 암으로 죽고, 예닌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공 역시 그치지 않자 연극학교도 문을 닫는다.
작품은 연극학교와 함께 자랐던 아이들을 담은 전반부와 2000년 감독이 '아나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후반부로 구성되어 있다. 포화속에서도 활력이 있었던 연극학교는 폐허로 변했고 아이들은 중 대부분은 전사했다. 살아남아 저항군을 이끌고 있는 한 청년 역시 죽음의 전선에 서있다. 죽음이 난무한 비극이지만 영화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저항이 주된 얼개가 된 흔치 않은 작품이다. 울부짖고 호소하는 무기력한 희생자가 아닌 억압에 저항하는 전사들이 이 작품의 주인공들.
‘불행’하지 않은 <나의 혈육>
장애와 질병을 가진 아이들이 부모도 없이 그룹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그룹홈의 엄마 수잔은 이름도 생소한 희귀병, 지체장애, 유전적 피부병을 가진 11명의 아이들과 왁자지껄한 나날을 보낸다.
수잔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낭포성 섬유증이라는 희귀질환을 가진 사내아이 죠. 포악한 성격의 죠는 함께 사는 장애아들에게 집밖에서 겪는 차별과 천대를 고스란히 경험하게 해주는 '세상의 거울'같은 존재이다. 영화 <나의 혈육>은 이 그룹홈을 1년 동안 관찰하면서 거기서 매일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통해 장애에 대한 공포와 무분별한 선입견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다. 이상 두 편은 시각장애인도 같이 감상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프랑켄쉬타인 <기업>
기업에 대한 자본주의의 환상을 비판하는 방대한 영상보고서 <기업>도 이번 영화제의 화제작 중 하나이다. 산업화 이후 기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존재 이유'를 의심받아온 적이 없는 무소불위의 가치. 기업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프랑켄쉬타인이라고 비꼬며 시작되는 이 작품은 GM과 HP등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수많은 기업의 전·현직 CEO들이 기업의 전도사로서 등장하는 한편 노엄 촘스키와 마이클 무어와 같은 비판적 시선 역시 동량으로 존재한다.
마이클 무어가 자본가들을 기습해 곤혹스럽게 만들어 웃음을 선사한 것과 달리 이 작품은 기업이든 그 반대편이든 모두 스튜디오에 정중히 모셔 그들의 말끔한 말들을 담았다. 이들의 말과 말 사이, 방대한 양의 기업 광고와 영화장면, 뉴스 자료화면 그리고 재현을 재배치해 '기업이란 무엇인가?'의 답안을 작성하는데 성공한다.
자유로운 몸짓으로 <저항하라!>
2차 대전 중 만들어진 뉴욕의 '리빙씨어터'는 반전운동과 함께 성장했다. 극장 안과 밖을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거침없이 자신들의 주장을 몸짓으로 말하는 이들은 '시위'를 연극처럼 연출하면서 그 연극 속에서 집회를 이끌어 나간다. 영화 <저항하라>는 이 극단에서 연기했던 감독이 초창기 기록화면을 비롯해 최근 반세계화 운동까지 리빙씨어터가 연기했던 '시위'를 다큐멘터리로 재창조해낸 역동적인 작품이다.
올해 인권영화제에서는 이상과 같은 다양한 이슈의 '해외일반상영작'이 모두 15편 상영되며 다음주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소개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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